나의 진심이 통한 듯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고 그러겠다 약속하더니…
“얘들아, 이제 진짜 일어나야 해! 빨리 밥 먹고 한글학교 가야지!” 밤이면 생생해지고 아침이면 시든 시금치마냥 생기라고는 찾기 힘든 우리가족. 토요일 아침 일찍 이런 올빼미가족을 깨우기란 보통 일이 아니다. 매주 가는데도 매번 빼먹지 않고 터져 나오는 아이들의 불평 불만과 마주한다. “Mum, it’s Saturday! Please let me sleep more.”
01_요샌 둘이 학교를 다니니 예전에 비하면 누워서 떡 먹기?!
애들은 그렇다 쳐도 애들 아빠라도 빨리 일어나 준비하는 시늉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애들 아빠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는다. 내 잔소리에도 꾹 참고 1분이라도 더 자려고 이불 속에 얼굴을 더 깊숙이 파묻는다.
“오늘 간식은 초코파이랑 뽀로로 주스 싸주려고 하는데?” 학교에 싸 갈 간식거리로 애들을 꼬셔 간신히 일으켜 세운다. 그래도 요샌 둘이 학교를 다니니 예전에 비하면 뭐 거의 누워서 떡 먹기다. 예전에 샬롯 혼자 한국학교 보낼 때는 정말 너무 힘들었다. 아침마다 울고 불고 가기 싫다는 애 달래도 보고 화도 내보고 그러다 도저히 안 되면 빼먹기도 하고….
부부가 둘 다 한국사람인 경우라 하더라도 힘들 텐데 우리 가정은 아빠는 영국인, 엄마는 한국인, 게다가 한국말이나 문화에 별로 관심이 없는 외국인 아빠라 엄마가 아이들에게 한국말을 하면 자기가 못 알아들으니 답답하다며 가정에서 영어만 쓰기를 원했다.
그런 가정에서 자란 우리 첫째에게 한글학교는 많이 낯설고, 공부도 어렵고, 한국말을 잘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많이 소외되는 공간이었던 듯하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 어르고 달래도 쉽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다 한번은 아이를 안고 차분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말이야, 저 멀리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났어. 거기서 태어나 자라고 학교도 다니고 어른이 되고 많은 걸 경험하면서 30년 정도를 한국에서 보낸 거야. 그러다가 우연히 오스트레일리아에 와서 아빠를 만나게 됐고 우리 샬롯이 태어나게 된 거지.
그래서 샬롯은 호주사람이지만 샬롯의 몸 안에는 엄마에게서 받은 한국인의 유전자가 들어 있는 거야. 생각해 봐. 우리 샬롯이 한국인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면서 한국말도 못하고 한글도 못 읽으면 그건 호주사람이면서 영어로 말도 못하고 영어를 읽지도 못하는 사람이랑 다를 바가 없잖아.
엄마는 우리 샬롯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더할 나위 없이 좋았지만 샬롯이 한국말도 더 잘 알아듣고 한글도 읽을 수 있게 되면 엄마랑 더 많은 걸 함께하고 서로를 더 많이 이해하게 될 거야. 지금은 처음이라서 힘들어. 엄마도 샬롯이 태어났을 때 젖을 주는 게 처음이라 많이 힘들었거든. 처음은 다 힘든 거야. 우리 조금만 힘내서 다녀보자. 응?”
02_꿀같이 주어지는 3시간… 하고 싶은 거 다 할 마음가짐으로
그때가 시기적으로 맞는 때였을까. 아이가 갑자기 이런 나의 진심이 통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 그러겠다고 약속을 하더니 그때부터 조금은 수월해지기 시작했다. 덜 울고 덜 짜증 냈다.
그러다 둘째가 학교 갈 나이가 되어 같이 등록했더니 그때부터는 자기가 선배랍시고 학교에서 어떤 일을 겪게 될지 이야기도 해주고 글자노래도 불러주고 하며 어른스럽게 굴기 시작했다. 역시 어른스럽게 굴려면 학교 가기 싫다는 말도 참아야 했나 보다. 둘째는 첫째에 비해 모든 면에서 쉬웠는데 한글학교 가는 것조차 쉬웠다. 초코파이만 준다고 하면 만사 오케이. 너무 쉬워서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한글을 가르치는 다른 곳들에도 아이들을 보내본 적이 있지만 대부분 그 수업시간이 짧고 체계적이지 않으며 대개가 종교적인 영향을 피해 갈 수 없는 곳들이었던데 비해 이 한국학교는 공교육 같은 체계가 잡혀 있고 3시간이라는 시간에 비해 학비는 저렴해서 우리에게는 거의 부담이 되지 않았다.
그 꿀같이 주어지는 3시간 동안 나는 하고 싶은 거 다 할 마음가짐으로 지내는데 요새는 학교 근처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게 참 좋아졌다. 풀타임으로 일하는 나에게 창문으로 스며드는 환한 아침햇살을 맞아가며 한가하게 책을 읽는 그 순간이 참 행복하다.
끝으로, 호주한국학교에 이 기회를 빌어 감사의 말을 꼭 전하고 싶다. 학교 선생님들의 한결같은 부드러운 목소리와 톤, 늘 웃는 낯으로 아이들을 대해주시는 태도, 많이 부족한 아이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가르쳐 주시는 인내심이 없었다면 학교를 보내면서 엄마인 나도 아이들도 결코 행복한 느낌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내 어릴 적 다니던 초등학교 (그때는 국민학교) 교장선생님 같은 위엄과 인자함이 묻어나는 교장선생님께도 코로나19와 같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끝까지 학교를 지켜주시고 교육을 이어나가 주시는 데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글 / 조은숙 (호주한국학교 학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