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역사다

나는 뉴라이트가 뭔지, 보수 진보가 뭔지, 좌우가 뭔지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새삼스레 그런 것들에는 논할 가치를 못 느낀다. 다만 내가 배우고 익힌 역사를 부정하고 비틀면서 권력유지를 위해 진실을 왜곡하고, 권력의 밥상에 숟가락 얹는 것에 인간이기를 포기한 인간들에게 내가 알고 있는 역사의 진실과 실제를 말하고 싶을 뿐이다.

나는 지난 칼럼에서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나 나름의 언어로 축하했다. 사람들이 말하는 좌우의 언어에 치우치지 않고 순수하게 동족으로서 자랑스러움을 표출했다.

스웨덴 한림원에서 한강의 작품에 대해 ‘역사의 트라우마를 직시하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다’라고 발표한 내면에는 한강 작가의 작품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가 숨쉬고 있다는 것도 나는 애써 말하지 않았다. 이념을 떠나 문학에 대한 뿌듯한 기쁨과 긍지를 즐기고 싶어서였다.

‘소년이 온다’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전두환 세력의 권력쟁취를 위해, 성실하고 옳고 바르게 살아가는 국민들을 짓밟은 5.18광주의 ‘국가폭력’을 고발한 핏빛 이야기다. 한강은 직접적인 손가락질이 아닌 간접적인 침묵의 언어로 폭력과 억압의 고통을 아프게 지적한 거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1948년 4월 3일 제주도에서 발생한 (제주4.3사건) 소요사태와 무력충돌의 진압과정에서 무고하게 희생당한 양민학살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흔적, 상처, 치유에 대한 이야기다.

썩어있는 권력떨거지들에게 이념이 뭔지, 좌우가 뭔지도 모르는 순진한 양민들을 무참하게 살해한 국가폭력과 잘못된 이념의 광기를 후회하고 뉘우치고 사죄하기를 바라는 진실을 향한 충고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발표되자 역겹게 배앓이를 하는 족속들이 등장했다. 나는 세상 살아가노라면 온갖 것에 배앓이를 하는 족속들이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지만, 세계가 부러워하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것에도 배앓이를 하는 동족들이 존재한다는 것도 알았다. 서글프거나 안타깝지는 않았다. 그냥 분노만이 치솟았다.

세칭 ‘작가 김규나’라는 인간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를 향해 비판과 폄하 발언을 늘어놓았다. 김규나는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정치적 이유로 결정되었으며 ‘소년이 온다’는 역사적 왜곡을 정당화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번 노벨문학상은 심사위원들이 정치적, 물질적 이유로 한강을 선택했을 것”이라는 어처구니없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비단 김규나 뿐만이 아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을 온 국민과 함께 축하해야 할 권력자라는 것들은 수상자의 작품을 이데올로기와 지역감정으로 매도하고, 유해도서로도 지정했다. 한국문학계의 듣보잡들도 해괴한 논리를 내세우면서 5.18광주민주화운동과, 제주4.3사건의 역사를 부정하고 왜곡했다. 그들은 한국문학을 모독하고 문학에 대한 정체성까지 부인한 거다.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는 권력의 눈치를 보면서 쉬쉬하며 입 열기를 주저하는 비굴하고 부끄러운 인간들에게도 역사의 진실을 들춰 보여준 거다.

‘소년이 온다’의 그때 그 광주에는 내 둘째 형님이 있었다. 2019년에 내 둘째 형님은 <1942년생 최인규의 특별한 기억>이라는 자서전을 펴냈다. 그 자서전 속에 ‘소년이 온다’의 5.18광주민주화운동 현장이 거짓없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1980년 3월 회사는 나를 호남지역 사업확장 임무를 부여하여 전남 광주 직판사업소장으로 발령하였다. 그 해 하순 (5월 25일)까지 광주직판장 개장을 목표로 나는 5월 18일 오전 일찍 광주행 고속버스를 타고 출발하였고 당일 오후 3시경에 광주에 도착했다. (나중에 알아보니 이날 내가 타고 내려온 고속버스 이후로는 광주로의 모든 차량운행이 중단되었다)

결국 나는 광주민주화운동이 발생한 당일에 아슬아슬하게 광주에 도착하여 운명적으로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생생하게 직접 겪고 목격할 수 있었다. (중략)

내가 광주 대인시장에 도착했을 때 데모하는 학생들을 전투복 차림에 진압봉과 소총으로 무장한 군인들 (공수특전단)이 무참히 구타하고 많은 학생들이 피범벅이 되어 군인들에게 끌려갔다. (중략) 19일은 교련복을 입은 고등학생까지 참가해 데모대의 규모는 더욱 커졌다. (중략)

5월 21일 정오경부터 오후 3시 사이에는 광주 상공에 헬리콥터가 1, 2회씩 나타나 기관총사격을 가하였기 때문에 나는 예상할 수 없는 방향에서 날아드는 헬리콥터의 유탄이 무서워 숨어 지냈다. (중략)

5월 24일경부터 27일까지의 새벽 어두운 한 밤중에는 “광주시민들이여! 모두 데모대에 합세하여 우리를 보호해주세요”라고 외치는 이동마이크를 통한 한 여인의 애절한 호소가 밤마다 계속되었다.

정확히 5월 27일 새벽4시부터 시작된 소총과 기관총 소리 끝에 완전히 사격이 정지되는 새벽 5시까지, 모든 데모학생들이 스러지는 동안 나는 갈등 속의 나약하고 비겁한 대한민국의 평범한 시민으로 숨어있었다.”

그렇게 내 형님은 행운처럼 역사의 현장에서 역사의 한 부분이 되었다. 내 형님은 꽃잎처럼 순수한 시민이다. 가족을 사랑하고 오로지 가족을 위해 성실하게 살아가는 민초일 뿐이다. 그렇기에 역사의 진실을 본대로 말한 증인인 것이다. 이래도 ‘소년이 온다’가 역사를 왜곡한 것인가. 참된 역사를 왜곡하지 말라.

 

 

왜들 이러시나 | 온라인 코리아타운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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