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엔

겨울엔 귀에서 파도소리가 들린다. 눈을 감으면, 사각사각 다가오는 차갑고 싸늘한 소리, 창문을 때리는 고함 소리. 단단히 여민 창문은 이내 부서지고 파도에 휩쓸려 허우적거리다 나는 파도가 되어 외롭게 허공을 떠돈다. 뼈는 뼈대로 시리고 마음은 마음대로 시리다.

그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군용 잠바에 파카를 덮어써도 싸늘한 칼바람이 꽁꽁 언 코끝과 발끝으로 밀려와 온 몸이 얼음장 같이 변해버렸다.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말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한밤 중에 보일러가 터졌었다.

증기가 돌아가야 하는 방바닥이 얼음으로 냉동창고가 되어, 두어 달을 연탄 난로를 안고 밤을 새웠다. 옷을 잔뜩 껴입고 털모자를 쓰고 잠들다 연탄가스로 응급실에 실려갔다가 살아났었다. ‘이 겨울이 다시는 오지 않았으면…’ 하고 기도를 했었다.

여름만 있다던 호주에 왔는데, 처음 1, 2년은 그런대로 지낼 만 했다. 그런데 세월이 가니, 이 겨울 역시 만만치 않았다. 여름으로 버티던 집이다 보니 대부분이 겨울에 방치 돼 있는 집들.

차라리 눈이라도 와야 포근할 텐데, 그것도 저것도 아닌 정떨어지는 썰렁한 겨울의 연속이었다. 그건 계절 탓만이 아니었다. 못내 이루지 못한 어떤 기다림이나 우환, 답답한 삶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 답답함을 해소하려 인터넷으로 한국의 소식을 접하지만, 하루도 편할 날이 없는 한국, 정떨어지기는 마찬가지였다. 갈 곳이 없었다.

봄에 일어나라고 어미는 신신당부를 하고 떠났다. 겨우내 뒤척이던 새끼 곰 실눈을 살짝 떠본다. 봄인가. 가느다란 실눈 사이 아직 시작도 안 한 냉냉한 겨울이 보인다.

다시 이불을 뒤집어쓴다. 어머니의 김장 준비는 늘 겨울을 알려주는 신호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김장을 담그던 어머니도, 김장이란 말도 사라진 지 오래다. 나는 늘 겨울처럼 살고 있었다. 겨울은 내 피붙이이거나 아니면 내가 겨울인 듯했다.

양로원을 10년째 다니고 있다. 집안에 노인네들이 많아서인지, 굳이 미리 알지 않아도 되는 눈물을, 가엾고 허무한 인생을, 족쇄처럼 달고 살아간다. 한 분이 돌아가시면 또 한 분, 또 한 분이 돌아가시면 다시 또 한 분.

매번 같은 양로원이다. 한꺼번에 돌아가시지도 않는다. 다가오는 파도와 같다. 나는 그 자리에 순서를 기다리는 파도처럼 서 있다. 마지막 노인이 돌아가시면 그 다음은 나다. 내게 마지막 어른은, 돌아가셔야 되기도 하고 돌아가시면 안 되는 분이다. 혼란스럽다.

겨울엔 파도가 애틋하다. 솟구치면 솟구칠수록 더 애틋하다. 무슨 말인가 하고 있는 것 같다.

파도에게 묻는다. “파도야! 네 꿈이 뭐니?” 파도가 내게 말한다. “내 꿈은 이 바다를 벗어나는 거야. 아주 오래 전부터…” 파도가 울먹인다. 나도 따라 울먹인다.

 

글 / 마이클 박 (글벗세움문학회 회장)

 

 

 

Previous article엄마도 영어 공부 할 거야! 108강 사과가 오렌지보다 더 맛있어요
Next article‘먹신’의 위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