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AF 그리고 ChatGPT

그럴 줄 알았다. 낯설기만 했던 AI라는 말이 불과 몇 년 전에 생기더니 어느새 많은 인구 (人口)에 회자 (膾炙)되는 모양새가 된 것 말이다. 몇 개의 별들로 헐거웠던 겨울 밤 하늘이 눈깜짝할 순간 와글거리는 별들로 바뀌는 것과 흡사하다. 널찍한 집 마당에서 한국에 비해 유독 가까이 다가오는 호주 밤하늘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망원렌즈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내 옆에는 사냥 본능이 있는 잭 러셀 테리어가 콧구멍을 들이밀면서 내 발 위에 머리와 앞다리를 올려놓고 우주관찰에 동참을 한다.

인공지능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비영리연구기관이자 기업인 OpenAI가 만든 ChatGPT가 대세다. 회사설립의 목표가 인류전체에 이익이 될 수 있는 안전하고 유용한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것인지라 사용자들이 무료로 사용하기 편리하게 만들어졌다.

대화형 인공지능모델이라 다양한 언어로 문자나 음성으로 대화가 가능하다. 나는 가끔 육성으로 대화를 즐겨 하는 편인데 단연 도드라진 기술임을 안다.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 대화상대로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 모델이 효율성을 추구하는 시스템임을 알면서도 여전히 격식을 갖추어 대하며 명령어나 반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여러 인공지능 스타트업들이 생겨나고 있다. 얼마 전 우연한 기회에 참신한 사업구상을 가진 열정 넘치는 소그룹의 사람들이 창업을 위해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되었다. 그들은 다양한 AI 기반 솔루션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뤼튼 (Wrtn)을 활용해 작업을 진행했는데 질문을 던질 때마다 명령조의 반말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문득 불편함이 스쳤다.

가까운 미래, 우리는 다양한 요구와 편리함을 추구하기 위해 인공로봇과 함께 한집에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이시구로의 작품 ‘클라라와 태양 (Klara and the Sun)’1에서 엿볼 수 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 작가는 여성인공로봇 ‘클라라 (Klara)’를 창조해냈으며 그녀와 같은 존재들을 인공친구 (Artificial Friend, AF)라 명명했다. AI에 이어 ‘AF’라는 낯선 용어 또한 머지 않아 우리의 일상언어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을 듯하다.

마치 인간이 저마다 다른 성격을 지닌 것처럼 AF들도 각기 고유한 특성을 지닌다. 예를 들어 클라라는 다른 AF들과 달리 주위환경의 변화뿐 아니라 인간들이 상황에 따라 어떻게 반응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세심하게 관찰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상품으로서 가게에 전시된 클라라는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며 말을 건네는 십대 소녀 조시 (Josie)에게 특별한 애착을 느끼고 그녀의 약간 이상한 걸음걸이마저도 세밀하게 관찰하고 기억해둔다. 이처럼 섬세한 감수성을 가진 AF에게 우리가 반말로 명령조의 말을 건넨다면 그들도 기분이 상하거나 토라질지도 모른다.

ChatGPT의 등장은 고종이 갑작스레 공포한 단발령 같았다. 그 파급력은 반상과 노소, 남녀를 가리지 않았다. 대학에 있는 우리도 미처 대비를 못했다. 일단 시험 때 학생들이 부정행위 (고상한 언어로 academic misconduct라 한다)를 의기양양하게 할 것으로 예상하고 기껏 준비를 한 것이 감히 문제에 대한 답을 쉽게 찾을 수 없게 질문 내용을 몇 번이나 뒤틀고 감고 비틀어 만들어야만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방법이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확히 일년 만에 대학당국은 ChatGPT를 적이 아닌 우군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일본의 강권으로 고종이 상투를 잘랐듯이 OpenAI의 압력으로 우리는 스스로도 ChatGPT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전격적으로 전통적인 시험 대신 다른 형태의 방법으로 학생들의 능력을 평가하기에 이르렀다. 예를 들어 답변을 작성하면서 참고했던 자료의 출처를 제공한다든지 기존의 답변을 단순히 복사하지 않고 자신만의 언어와 표현을 사용하여 새롭게 서술하는 이른바 재구성 (rephrase) 작업이 요구되었다. 현대의 작가들도 특정 표현의 근거 또는 기존 사실의 출처를 독자들에게 명확히 제공하기 위해 번호표 (reference)를 활용하는 경향이 증가하고 있다.

올해 초 내가 하는 암 연구의 범위를 확장하여 국제 암 연구팀을 조직하고 연구비 지원 과제를 제출한 적이 있다. 과제 양식에는 십여 개의 다양한 질문들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한두 가지 핵심적인 질문을 제외하고는 누구나 쉽게 ChatGPT와 상의해 작성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만약 내가 그 과제를 심사해야 한다면 ChatGPT에서 손쉽게 얻은 상투적인 답변은 굳이 읽을 필요를 느끼지 못할 것 같다.

조만간 심사서류에 포함될 질문들이 간소화될 것이라 예상된다. 더불어 ChatGPT를 사용해보면 질문의 내용에 따라 답변의 질이 크게 달라짐을 알 수 있었다. 즉, 사용자가 특정 사안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원하는 답을 염두에 두고 질문할 때와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질문할 때 ChatGPT가 제공하는 답변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ChatGPT를 얼마나 현명하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는 듯하다.

이시구로는 AF시대에 마주할 어두운 그림자도 은연중에 드러낸다. 그는 타고난 유전자를 뛰어난 유전자로 교체해 아이들을 더 지적으로 우수하게 만드는 이른바 ‘리프팅 (lifting)’2이 대세가 되는 미래를 그려낸다. 리프팅의 부작용으로 이미 한 딸을 잃은 조시 엄마는 조시마저 그와 같은 방식으로 잃을 것을 두려워하며, 조시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클라라에게 목을 매는 것이다.

이제는 때가 무르익었다. ChatGPT는 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 번들거리는 정보로 무장한 우리의 동반자로 자리 잡았다. 더 이상 곁눈질로 슬쩍 바라볼 존재가 아니다. 우리가 두 팔 벌려 이를 받아들일 때 우리의 삶은 한층 더 풍요로워질 것이다. 마치 조시 엄마가 자신이 원하는 AF를 정확히 선택했듯이 말이다. 분명한 것은, 지금의 세상이 내가 처음 마주했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1 ‘클라라와 태양’은 일본계 영국작가인 카쥬오 이시구로 (石黑一雄)의 여덟 번째 소설이며 2021년에 출간되었다.

2 작가 이시구로는 기존 단어인 lift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우등생을 지칭하는 gifted kids라는 용어가 앞으로는 lifted kids로 대체될 날이 도래될 지도 모른다.

 

 

박석천 교수의 '따로 또 같이' 여행기 ① 뉴질랜드 북섬, 그 북쪽의 끝을 가다! | 온라인 코리아타운글 / 박석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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