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쯤 전이었습니다. “태선아. 나, 아무래도 조만간 회사를 정리해야 할 것 같아…” 오랜만에 가진 통화에서 그는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친구들은 그에게 ‘무법자’라는 별명 아닌 별명을 붙여 놀리곤 했습니다. 말 그대로 법 같은 건 무시하고 사는 양아치 쓰레기가 아닌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라는 역설적인 표현이었습니다.
아주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그는 법이나 도덕에는 물론,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른바 샌님 혹은 쫌생이 같은 성격도 아니었습니다. 학교 때부터 공부도 잘 하고 예의도 바르며 남을 잘 챙기는 ‘범생이’였음에는 틀림이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20여년간의 직장생활 끝에 자신의 회사를 세웠고 그의 성격대로 일절의 ‘장난치는 일’ 없이 기본과 원칙대로 회사를 이끌어왔습니다. 크게 벌리기보다는 직원들과 함께 작지만 안정되고 행복한 회사를 만드는 게 꿈이었던 그는 은행 돈을 단 한 푼도 쓰지 않았습니다.
직원들에게도 줘야 할 돈은 단돈 1원도 빼놓지 않았고 그가 해줄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직원들에게 많은 것들을 내줬습니다. 사장이라기보다는 동네 형이나 오빠 같은 리더십을 갖춘 그는 스무 명 남짓한 직원들과 함께 그야말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소확행’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가끔 한국에서 만나 포장마차에서 술잔을 부딪치며 “우리는 성격도 그렇지만 회사경영에 있어서도 참 닮은 구석이 많은 것 같아. 우리 오래도록 아니, 영원히 이런 마음 변치 말자”고 다짐을 하곤 했습니다.
그랬던 그의 회사가 휘청거리기 시작했던 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피할 수 없었던 코로나19 직격탄 때문이었습니다. 상황이 어려워지자 동종업계에서는 덤핑과 각종 반칙들이 난무했지만 오영민 사장은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자신의 행보를 계속했습니다. 그는 “그 동안 우리회사로 인해 그리고 착하고 성실한 직원들로 인해 잘 먹고 잘 살았으니 내가 내놓을 수 있을 만큼은 내놔봐야지…”라며 웃어 보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더 이상은 내놓을 게 없었던 모양입니다. 게다가 그야말로 내일 모레면 칠십인 나이에 이제는 자신도 좀 쉬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6개월 전, 자신이 공들여 키워온 회사의 문을 닫았습니다. 더 이상 버티다가는 자신은 물론, 직원들도 힘들어질 게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직률이 제로에 가까웠던 고마운 직원들에게 마지막 월급이며 퇴직금을 살뜰하게 챙겨준 그는 끝까지 “직원들과 그 가족들에게 참 많이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얼마 후, 부인과 함께 살고 있던 서울 아파트를 팔아 경기도 양평에 자그마한 전원주택을 마련한 그는 “뜻밖에 나하고 잘 맞는다”며 카톡을 보내왔습니다. 사진에는 텃밭에서 길러낸 각종 채소들을 들고 환하게 웃는 부부의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는 회사를 정리하고 한 달이 지나자 오랜 시절 공들여온 회사와 자신의 직업을 잃었다는 자괴감이 들어 적잖이 괴로웠다고 했습니다. 자칫 우울증으로 번질 위험성도 있었지만 곁에서 뜻을 같이 하는 부인 덕분에 함께 여행도 하고 낚시도 하며 이겨냈다고 했습니다. 결혼해서 잘 사는 줄로만 알았던 아들이 갑자기 이혼을 하고 하필이면 그 머리 아픈 시기에 부부 사이를 파고 들어온 것도 작지 않은 스트레스였습니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그들 부부는 하루 종일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아들을 보면서도 “그나마 아이 없이 헤어진 게 다행이다”라고 했습니다.
세상만사가 모두 우리 뜻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오영민 사장의 그 같은 결정은 스스로를 위해서도, 주변을 위해서도 참 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능력이 닿는 한 최선을 다했고 세상을 향해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살아온 그가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제는 가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집을 찾는다는 다섯 살짜리 손녀와 네 살짜리 손자를 안고 활짝 웃는 부부의 사진이 날아왔습니다. “태선아, 걱정마, 우리 건강하고 행복해”라는 메시지와 함께…. 내년 4월, 한국에 가면 오영민 사장 아니, 영민이네 전원주택에서 찐하게 한잔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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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