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추억?!

이런 일이 생길 줄 알고 그랬던 건 아닙니다. 코로나19와는 상관없이 오래 전부터 ‘다리 떨릴 때 말고 가슴 떨릴 때 많이 다니자’는 이야기를 자주 해오던 차였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지난해 4월, 큰맘 먹고 결혼 36주년기념 동유럽 6개국 여행을 12일 동안 다녀온 건 그야말로 참 잘한 일이었습니다.

지인부부와 함께 베트남 캄보디아 여행을 다녀온 지 불과 4개월만에 전격 결정한, 우리로서는 나름 과감한(?) 여행이었습니다. 물론, 둘 다 이른바 패키지여행으로, 부지런히 여기저기를 찍고(?)다니기에 바쁘긴 했지만 그림 같이 펼쳐졌던 독일,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헝가리, 체코 등 동유럽 여러 나라의 예쁜 풍경들은 지금도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멀리서 찔끔 바라봤던 눈 덮인 알프스는 더 가까이에서 만나고 싶다는 강한 충동이 일게 했고, 슬로베니아의 블레드섬 성모승천성당에서 아내와 함께 쳤던 ‘소원의 종’도 잊을 수 없는 기억입니다. 프라하에서 히스토릭 올드 트램을 40여분 동안 전세(?)내 시내 곳곳을 달리며 중세의 향기를 만끽했던 매력 가득한 시간, 환상적인 야경에 푹 빠졌던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야간 유람선에서의 짜릿한 기억… 모든 것들이 새록새록 그립기만 합니다.

베트남 여행 전에는 TV에서나 보던 3000여개의 섬으로 이뤄진 하롱베이의 신비한 모습에 부러움의 침을 삼키곤 했는데 마침내 그곳을 떠다니며 신선놀음을 즐겼습니다. 그 유명한 키스바위 앞에서는 아내와 둘이 야한(?) 모습의 셀카사진도 남겼습니다. 어린 시절, 아주 나쁜 공산주의자로만 교육받았던 베트남 민족운동지도자 호치민 생가를 둘러보는 동안에는 그의 국민과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속속들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직 때가 묻지 않아 유독 착하고 순박해 보이던 캄보디아 사람들 그리고 보는 내내 입을 다물 수 없었던,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는 앙코르 와트의 위용은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또 한 가지, 그곳 씨엠립 북한식당에서 가졌던 북쪽 동포들과의 짧은 만남은 지금도 가슴 한 켠에 먹먹하게 담겨 있습니다.

코로나19라는 괴물이 들이닥치기 직전인 연말연시 연휴기간 동안 좋은 사람들과 9박 10일로 가졌던 타스마니아 여행 또한 다행스럽고 행복한 기억입니다. 론세스톤에서 크래들마운틴, 스트라한, 호바트 그리고 저 아래 사우스포트까지… 하늘에서 무수히 쏟아져 내리던 별, 아찔한 규모의 고든댐, 굴농장 지인 덕분에 원 없이 먹었던 굴 그리고 크레이피쉬… 모두모두 소중한 기억들입니다.

언제 하늘 길이 다시 열려 가슴 떨리는 여행을 마음껏 다닐 수 있을지 답답한 요즘… 지난 주말에는 선배지인 부부들과 함께 저비스베이 2박 3일 여행을 문득 다녀왔습니다. 함께 웃고 떠들며 얘기하며 맛있는 음식과 행복한 시간을 공유할 수 있었던 소중한 여행이었습니다. 심술궂은 날씨와 거친 파도 때문에 낚시 재미는 못 봤지만 드넓게 펼쳐진 바다는 답답했던 우리의 가슴을 탁 트이도록 만들어줬습니다. 함께 먹었던 삼겹살, 마파두부덮밥, 카레라이스, 라면… 한끼한끼, 순간순간들이 모두모두 고맙고 아름다운 기억들입니다.

이번 여행에서 아내와 저는 막내였습니다. 모두들 저보다 많게는 열세 살에서 적게는 일곱 살까지 위인 형들이지만 누구 하나 꾀부리지 않고 서로서로 나서서 일하며 서로를 챙겨주는 모습은 정말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매 끼니를 단 한번도 거르지 않고 알차게 챙겨 몸무게가 확 불어나게 만들어준 손맛 좋은 누나들도 고마운 존재들이었습니다. 좋은 사람들과 여행기회를 자주 갖고 싶어지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500킬로미터를 훌쩍 뛰어넘는 길을 운전하고 달리는 동안도 행복은 새록새록 돋아났습니다. 지난번 극심한 산불로 시커멓게 타버렸던 나무들에서 파릇파릇 새 순이 돋는 건 생명의 신비를 느낄 수 있는 위대한 모습이었습니다. 해외여행은 당분간 꿈도 꾸지 못할 상황… 이번 기회에 그 동안 가보지 못했던 호주의 좋은 곳들을 힘닿는 데까지 많이 많이 다녀봐야겠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가끔씩은 에이든과 에밀리도 함께 하자고 유혹(?)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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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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