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 “짭새들은 물러가라. 훌라훌라. 짭새들은…” 7, 80년대의 대학 캠퍼스는 온통 ‘짭새’들로 들끓었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돌멩이와 화염병, 최루가스가 난무하는 가운데 짭새들과의 쫓고 쫓기는 싸움이 계속됐습니다. 어쩌다가 경찰에 짭새라는 별명이 붙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데모를 하는
대학생들이나 그들을 막는 경찰들이나 모두 ‘시대를 잘못 만나’ 그
같은 상황들을 겪어야 했을 겁니다. 때론 걷잡을 수 없이 격렬해지기도 했지만, 시위대와 경찰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질서가(?)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그 질서가
여지 없이 깨지는 것은 이른바 ‘백골단’이라 불리는 경찰특공대의
출현으로였습니다. 아래 위로 청바지와 청자켓을 말끔히(?) 차려 입고 머리에는 하얀
하이바를 쓰고 있는 경찰특공대를 우리는 백골단이라 불렀습니다. 그들이 캠퍼스 안으로 치고 들면 우리는
혼비백산하게 마련이었습니다. 실제로 백골단 한 명이 대학생 두 서넛 때려 잡는 건 일도 아니었습니다. 얼마 전 여섯 명의 목숨을 앗아간 ‘용산참사’ 현장에서도 그 백골단의 위용은 ‘유감 없이’ 발휘됐습니다. 아무리 철거민들이 화염병과 새총으로 강도 높은 시위를
벌였다지만, 아무리 경찰특공대가 상부의 명령에 의해 움직였다지만, 철거민들을
향한 그들의 행태는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MBC 뉴스데스크 화면을 통해 현장을 지켜보면서 20년도 훨씬 전의 상황들이 떠 올랐습니다. 자기 나라 국민들을 향한
있을 수 없는 폭압, 말도 안 되는 변명과 억지로 일관하는 검찰과 경찰…. “냉수를 몇 컵 마신 후 심문을 시작, 박종철군 친구의 소재를 묻던 중 책상을 탁! 치니 갑자기 억! 소리를 지르면서
쓰러져 중앙대 부속병원으로 옮겼으나 12시경 사망하였다.” 1987년 1월 14일, 당시 서울대생이던 박종철씨가 ‘물고문’으로
사망하자 치안본부장이 발표한 내용의 일부입니다.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 거짓말을 할 거면 차라리 그럴싸하게 해야
했습니다. 이번에도 검찰은 용산참사 진압작전을 ‘최종 승인한’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에 대해 “무전기를 꺼놓고 있어 당시 상황을 몰랐고, 그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요지의 발표를 했습니다. 삼척동자도 웃을만한 이 같은 이야기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고, 결국
김석기 청장은 10일 ‘자진사퇴’를 발표했습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건 어떤 경우에든 불가능한 법입니다. 검찰과 경찰은 “용산참사는 철거민들이 법을 지키지 않아 발생한 일이고, 경찰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발표했지만 철거민들, 엄밀히 말하자면 ‘세입자’들에게
‘법에서 정해진 만큼의 보상이라도’ 해줬더라면 이번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건설회사와 땅 주인,
집주인만 배 불리는 재개발사업, 그 안에서 세입자들은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을 멈출
수 없었을 것입니다. “3억 5천 주고 샀다는데 지금은 60억까지 나간답니다. 땅 주인은 횡재했지만 우리는 2억 3천 들여 이 식당을 꾸려왔는데 5천도 안 되는 돈 받고 나가라는 겁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한 세입자의 절규가 귓전에서 맴돕니다. 이런 류의 얘기는 되도록 안 하려 했지만, 용산참사를 보면서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는 현실이 너무 속상해 잠시 흥분(?)
해봤습니다.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 김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