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한 병과 전 몇 가지… “자기야, 트렁크 좀 열어줄래?” 언제 넣어 놓았는지 트렁크 안에는 소주 한 병과 전 몇 가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아내는 어머니 묘비 앞에 그것들을 가지런히 놓았고, 딸 아이는 예쁜
꽃 한 다발을 새로 꽂았습니다. 우리는 짧게 기도를 한 후
성호를 긋고 소주 한 병을 어머니 묘소 근처 여기저기에 뿌렸습니다. 여느 때처럼 꽃병 물 갈고 새로운
꽃을 꽂는 것으로 생각하고 갔는데, 아내는 추석이라고 조금 특별한(?)
준비를 했던 겁니다. 문득 2004년 3월 31일,
어머니 장례식 날 생각이 났습니다. 성당에서 장례미사를 마치고 룩우드 묘지에 어머니를 모시던
날, 조문객들이 꽃을 한 송이씩 헌화하고 막 흙을 덮으려는 순간 아내가 어머니 곁으로 한 발 다가섰습니다. 그리고는 손에 돌돌 말아 쥐고
있던 100불짜리 지폐 한 장을 어머니 위에 놓여진 꽃들 사이로 살며시 끼워 넣었습니다. 이른바 ‘노잣돈’을 넣어드렸던
겁니다. 일흔 일곱에 세상을 뜨신 어머니는
장염 진단 후 몇 달을 고생하셨는데, 마지막 한 달 동안은 아내가 대소변을 모두 받아내야 했습니다. 아내는 메디케어도 없는 상황에서 하루에 1,000불 이상씩 들어가는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어 어머니를 큰 병원 한 번 못 모시고 간 게 늘 죄송스럽다고 얘기합니다. 워낙 성격이 남자 같고 며느리를
살갑게 대하지 않으셨던 어머니였음에도 아내는 마지막 몇 개월 동안 어머니께 제대로 해드리지 못 한 게 늘 마음에 걸리는 모양입니다. 우리 식구는 어머니를 룩우드
묘지에 모시고 나서 지금까지 4년 반 동안 매주 어머니 묘소에 들릅니다. 꽃병 물 갈고 주변을 정리하는 게 고작이지만 매주 거의 빠짐 없이 어머니를 찾아 뵙고 있습니다. 한 번 두 번 안 가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아예 안 가게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매주 가는 습관을 들이자는 아내의 의견에 따라 일요일마다 성당에 갔다가 룩우드 묘지를 찾는 겁니다. 부모와 자식은 서로의 거울이
되는 것 같습니다. 평소 엄마가 할머니에게 하는 걸 보면서 딸아이도 이런저런 것들을 많이 배웠던 모양입니다. 딸아이는 추석 날 아침, 많이 피곤하고 머리가 아프다면서도 아침 일찍 엄마 아빠를 따라 나섰습니다. 추석
위령미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딸아이는 할머니가 좋은 곳에서 편안히 지내시라고 할머니 앞으로 위령헌금을
봉헌하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 아내를 친 딸처럼 아껴주시는 어르신 부부를 모시고 점심식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아내는 그날 생신을 맞은 사모님께 예쁜 꽃바구니와 작은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테레사, 니는 마음이 참 곱다. 전에 시어머니 하관식 때도 니 100불짜리 한 장 시어머니께 넣어드리는
거 내 다 봤다. 테레사 니가 어른께 그래 잘 하니 지금 이렇게 행복하게 잘 사는 기라.” 결혼하면서 숭조돈종 (崇祖敦宗) 즉, 조상을
잘 모시면 자손이 복 받는다는 의미의 휘호를 들고 저에게 온 아내는 실제로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정성을 다했습니다. 추석 날, 어머니를 향한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새삼 옛날 생각들이
났습니다. ********************************************************************** 김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