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2

제목김장훈 국장 이야기 #4532022-07-23 16:03

김장훈 국장 이야기

 

나 먼저 일어설테니 즐겁게들 마시라구. 하지만 너무 쎄게 마시진 말고내일 마감시간 지키는 거 잊으면 안 돼!” 그날도 김장훈 국장은 그렇게 술자리를 떠났습니다.

 

늘 그랬듯이 술자리가 시작된지 30분 정도 된 시간이었고, 김 국장은 일어서면서 고참기자에게 1만원짜리 한 장을 건넸습니다. “나머지는 당신들이 알아서 내라는 말과 함께.

 

80년대 중반, 우리는 이런 핑계 저런 이유로 하루가 멀다 하고 술자리를 가졌습니다. 그때마다 김장훈 국장은 국장님, 한 잔 하시죠?” 하는 우리의 제안을 거부하지 않았고, 술잔이 몇 바퀴 돌고 분위기가 뜰 때쯤이면 먼저 일어서곤 했습니다.

 

해직기자 출신으로, 뛰어난 취재력과 필력을 지닌 김 국장은 업무에 관한한 무서우리만치 철저했지만, 사석에서는 한없이 부드럽고 편안한 큰형님 같은 존재로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그는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후배기자들과 오랫동안 자리를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순전히 우리를 편하게 해주기 위해서자리를 일찍 뜨곤 했습니다. “내가 계속 붙어 있어봐. 당신들이 마음 놓고 술 마실 수 있겠어?”

 

20년이 훨씬 지난 시절의 이야기이지만, 저의 첫 상사이기도 했던 그분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지난 월요일(4) 저녁 <코리아 타운>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수요일(6)이 창간 9주년 기념일이었는데, 수요일은 바쁜 날이기 때문에 이틀 앞당겨 회식자리를 가졌던 겁니다.

 

그날 회식에는 <코리아 타운> 전 직원, 그리고 아내가 특별히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 꽃을 피우며 회식이 진행됐고 1차가 끝난 후 아내와 저는 자연스럽게 일행에서 빠졌습니다. 젊은 사람들끼리 재미 있게 마시고 노는 순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남은 사람들은 이후 펍에도 갔고 노래방에도 갔다고 했습니다.

 

오랜 세월 회식자리의 쟁쟁한 주역(?)이었던 저도 어느덧 자리를 피해주는위치에 와버렸습니다.

 

저나 아내는 그런 부분에서는 좀 별난 편입니다. 아내는 1년에 두 번, 창간기념 회식과 연말 송년파티 외에는 회사에 모습을 내보이지 않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내가 <코리아 타운>에서 어카운트 업무를 맡고 있다고 생각하시는데, 우리는 부부가 한 직장에서 일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내는 평소에는 회사 사람들 눈에 띄지 않다가 직원들이 쉬는 금요일마다 회사에 나가 우편물 발송작업 등을 돕습니다.

 

아무리 잘 해줘도 윗사람은 윗사람이고, 아랫사람들에게는 아무래도 불편한 존재이게 마련입니다. 2, 3차로 이어지는 회식자리에 끝까지 따라 붙으며 말을 섞고 마이크를 놓지 않는 건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윗사람의 모습일 것입니다.

 

윗사람 혹은 상사가 가져야 할 덕목 중 하나가 아랫사람들을 편하게 해주기 위해 적당히 빠져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난 월요일 저녁,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문득 20여년 전 우리를 편하게 만들어주던 김장훈 국장을 떠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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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