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2

제목그 피가 어디 가겠어? #4502022-07-23 16:00

그 피가 어디 가겠어?

 

시간은 어느덧 밤 아홉 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습니다. 토요일 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아들녀석은 벌써 여러 시간째 컴퓨터와 씨름을 하고 있었습니다.

 

컵라면에 김밥으로 대충 저녁을 때웠지만, 슬슬 피로도 몰려오고 지치기 시작했습니다. “괜히 시켰나? 전문가에게 맡길 걸 그랬나 보다하는 생각이 들 무렵, 땀에 흠뻑 젖은 아들녀석이 다가와 싱긋 웃었습니다. 장장 이틀 간에 걸친 대 작업(?)이 끝나는 순간이었습니다.

 

2주 전, 회사 서버를 새것으로 바꿨습니다. 기존 사용해오던 서버를 꽤 쓸만한 사양의 최신 컴퓨터로 교체했는데 <코리아 타운> 웹마스터를 맡고 있는 아들 녀석이 굳이 세팅만은 자신이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한국에서부터 집에서는 물론 학교에서까지 컴퓨터에 관한 크고 작은 문제는 도맡아 해결했고 지금도 어지간한 건 다 해내고 있긴 하지만 서버는 믿음이 좀 덜 가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꼭 자기가 해보겠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바람에 아들녀석에게 맡겨보기로 했던 건데, 금요일 오후부터 시작된 서버 세팅 작업은 밤 늦게까지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다가 다음 날로 이어졌습니다.

 

이튿날 점심 무렵, 드디어 다 됐나 싶었는데 네트워크 부분에서 충돌이 발생하며 다시 고전하다가 밤 9시 반쯤 서버 세팅을 완료한 것입니다.

 

어찌 보면 이틀 동안 사서 고생하긴 했지만 아들녀석은 해냈다는 마음에 많이 뿌듯해 했습니다. 그 같은 과정에서 스스로도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고, 서버를 자기 힘으로 세팅 해보겠다는 의지와 얼마간의 회사 경비를 세이브 해보겠다는 마음이 기특하게 다가왔습니다.

 

아들녀석은 컴퓨터와 관련된 일이라면 안 먹고 안 자면서라도 끝장을 보곤 합니다. 사실 금요일 밤에도 제가 일을 끊지 않았더라면 밤새도록 컴퓨터와 씨름했을 것입니다.

 

일에 관한 한 <코리아 타운> 기자로 일하고 있는 딸아이 또한 예외가 아닙니다. 이 녀석은 주말에도 카메라와 수첩을 들고 시티나 스트라스필드, 그밖의 지역들을 헤집고 다닙니다. 이런 취재와 저런 인터뷰들을 위해서입니다.

 

집에서도 새벽까지 컴퓨터 자판 두들기는 소리를 종종 듣게 됩니다. 데드라인을 지키기 위해 늦은 시각까지 그렇게 기사를 써내고 아침에는 폐인의 모습으로 엄마 아빠를 만납니다.

 

어린 나이에 여기저기 바쁘게 뛰어 다니며 취재하고 기사를 써내는 딸아이를 보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컴퓨터와 씨름하는 아들녀석을 보면서, 주변 사람들은 흔히 그 피가 어디 가겠어?” 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얘기합니다.

 

현장을 뛰어다니던 시절, 저도 참 많은 날들을 뜬눈으로 지새웠습니다. 한 번 붙들면 끝장을 봐야 밥을 먹든 잠을 자든 하는 성격이라서 남들보다는 조금 더 많이 그랬던 것 같습니다.

 

자기 일과 씨름하는 두 아이를 보면서 문득 부모는 자녀들의 좋은 스승이 된다는 말을 곱씹어봤습니다. 같은 공간에서 숨쉬며 느끼는 부모의 모습은 자식들에게 그대로 옮겨 가게 되나 봅니다.

 

실제로 부부싸움을 자주 하는 집 아이들은 소꿉장난을 하면서도 욕하고 때리고 부수는 놀이를 합니다. 반면,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부모와 함께 사는 아이들의 놀이에서는 부모의 그 같은 모습이 그대로 묻어납니다.

 

좋은 스승, 아름다운 거울이 되기 위해서는 부모나 자식이나 서로서로에게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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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