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도 나랑 결혼한다고? “저는 다시 태어나도 우리
신랑이랑 결혼할 거예요.” 바보 같은 아내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공연하게 이런 얘기를 꺼내곤 합니다. 거기에 “세상에 이런 남자가 또 어디 있어요?” 하며 까르르… 한 술을 더 뜹니다. 아내의 이 같은 망언에
제 주가도(?) 덩달아 오르긴 하지만 저는 제 자신이 얼마나 찌질하며 아내를 향한 미안함 또한 얼마나
큰지를 스스로 잘 알기 때문에 아내 곁에서 그저 멋쩍은 웃음만 짓게 됩니다. ‘남편은 남의 편’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지만 어린(?)시절의 저는 아내보다는, 가족보다는 남을 위해, 일을 위해 더 열심이었습니다. 직업의 특성상 새벽에 나가 새벽에 들어오는 생활의 반복에 주말도 휴일도 없이 일에 빠져 살았습니다. 어쩌다 여유시간이 생겨도
동료, 선후배들과 어울리느라 착실한 가장 노릇은 잘 못했습니다. IQ
143의 학창시절 내내 범생이, 무슨 일을 하든 어디에서든 늘 선두그룹에 들어있어 ‘능력 있다’는 말은 자주 들었지만 혼자 곰곰이 생각해보면 여기저기
허술한 부분이 너무너무 많았고 바보 같기도 세상 누구 못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넉넉지 못한 판에
남 생각해주기에 바빴고 회사 살리기를 한다고 1년 반 동안 월급 한푼 안 받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던 일과
말도 안 되는 회사 보증서류 싸인으로 서른 두 평 아파트를 날려보낸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찌질 대마왕’입니다. 요즘 딸아이 부부가 알콩달콩
재미있게 사는 걸 보면서 아내의 21년 동안 계속됐던 홀시어머니 모시기가 어땠을지 순간순간 느껴집니다. 남편이라는 존재가 일에 미쳐, 사람에 미쳐 남의 편으로만 살았으니
그 동안 아내의 외로움과 스트레스는 말로는 다할 수 없을 정도였을 겁니다. 그럼에도 바보 같이 착한
아내는 그걸 다 자신의 속으로 오롯이 받아냈습니다. 그랬기에 우리는 30년을
훌쩍 넘긴 결혼생활 동안 싸움다운 싸움을 채 다섯 손가락, 아니 세 손가락 안에도 꼽지 못할 정도로
해봤습니다. “그래도 내가 뒤늦게나마
철이 좀 들어서 다행이지?” 하면 아내는 재미있다는 듯 깔깔댑니다. 아직까지도
제가 남편이 아닌 남의 편으로 살고 있다면 아내의 속이 어땠을까 싶습니다. 다행이 우리는 둘 다 낚시라는
공통의 취미를 갖고 있어 제가 회사 일 하는 시간과 아내가 수영장 가는 시간을 빼고는 따로 지내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최근에는 뉴카슬 갈치낚시에
빠져 하루에 왕복 300킬로미터를 다녀오곤 했습니다. 먼
길을 오가는 동안 아내는 줄곧 제 입에 이런저런 먹을 것들을 넣어주고 쉴새 없이 재잘대기도 합니다. 가끔은
어린아이처럼 까불기도 합니다. 둘이 함께 있는 게 좋아서, 여행이
즐거워서도 있겠지만 장거리 운전에 제가 피곤해할까 봐 스스로가 청량제 역할을 해주는 겁니다. 실제로
아내는 가끔은 운전 중인 제 목을 부드럽게 주물러 풀어주기도 합니다. “자기야, 자기는 다시 태어나면 나랑 결혼할 거야?” 아주 가끔씩 아내는 저에게서
이걸 확인(?)하려 듭니다. “미쳤어? 다음 생에 또 너랑 살게? 야, 이번
생 한번으로도 지긋지긋하다” 또는 “다음 번에는 다른 사람하고
살아봐야지”라고 많은 사람들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아내의 질문에 대한
저의 대답은 YES입니다. 아내처럼 ‘세상에 당신 같은 사람이 또 어디 있겠느냐?’는 생각보다는 ‘어린 시절 아내에게 제대로 못해준 게 너무너무 많아서 다음 생에 한번 더 만난다면 그런 모든 것들을 온전히 제대로
해주기 위해서’입니다. 마음 약하고 멍청하고 나보다는
남 생각을 먼저 하는 찌질한 저와 다시 태어나도 결혼하겠다는 바보 같은 아내… 오늘이 그 아내의 결혼기념일입니다. 그리고 찌질한 저는 오늘도 아내에게 특별한 선물이나 멋진 이벤트 없이 또 하나의 미안함을 쌓아둡니다. ********************************************************************** 김태선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