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2

제목트레인은 내 친구? #8342022-07-23 22:01

트레인은 내 친구?!

 

이젠 어느 정도 재미가 붙었나 봅니다. 요즘은 시티 나갈 일이 생기면 무조건 차를 버리고(?) 트레인을 이용합니다. 워낙 운전을 좋아하지만 시티는 복잡하기도 하고 주차료도 어마무시해 트레인을 생각했던 건데 이게 탈수록 정이 가는 겁니다.

 

한국에서도 가끔은 저녁에 확실한 술 약속이 있거나 하면 차를 놔두고 지하철을 타긴 했지만 그땐 말 그대로 지옥철이었습니다. 이리 밀리고 저리 끼이고지금 생각해도 짜증 가득 입니다.

 

거기에 비하면 시드니의 트레인은 정말 편안합니다. 물론, 제가 출퇴근 러시아워를 피해서 타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저에게 있어 트레인은 작은 휴식처가 됩니다.

 

공격적인(?) 영업활동을 하지 않는 코리아타운은 광고주께서 체크를 받으러 오라시든지 광고 컨셉을 의논하고 싶다고 하실 때 만남이 이뤄집니다. 며칠 전에도 그런 이유들로 시티 행 트레인에 몸을 실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발폰에 정신을 팔고(?) 있었지만 저는 차창 밖으로 이어지는 바깥 풍경에 시선을 고정시켰습니다. 아주 오래된 듯한 건물들이 정겹게 스쳐 지나갑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것 같은 방앗간 건물도 보이고 맛있는 과자의 대명사 Arnott’s Biscuits라는 글씨가 이마에 박힌 건물도 눈에 들어옵니다.

 

시드니에 처음 와서 마음에 들었던 것 중 하나가 이곳에는 높은 건물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때 한 지인의 4층짜리 아파트에서 내려다 본 동네 풍경이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저기 나무들이 몽글몽글 서있고 군데군데 들어서 있는 집들이 정말 예뻐 보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시드니에도 크고 높은 건물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들어서고 있습니다. 가끔씩 길을 가다 보면 눈앞을 가리는 대형빌딩들이 확 다가와 깜짝깜짝 놀라곤 합니다. 집을 지을 수 있는 땅은 제한돼 있고 인구는 늘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긴 하겠지만 문득 옛날의 그런 아기자기한 모습들이 그리워집니다.

 

제 자리 건너편의 다섯 살쯤 돼 보이는 남자아이는 엄마와 함께 나들이를 가는 모양입니다. “아니, 아빠는 지금 일하시는 중이니까 찍어서 할머니한테 보내자.” 아이는 엄마의 이야기에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며 혀까지 쏙 내밀고 개구쟁이 짓을 합니다. 할머니에게 사진을 전송하고 나서도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엄마와 재잘재잘 이야기를 계속합니다.

 

타운홀 역을 나서니 그곳에는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집니다. 평소 집이 있는 이스트우드와 회사가 있는 웨스트라이드 그리고 기껏해야 스트라스필드, 리드컴, 캠시, 채스우드 정도를 오가던 것에 비하면 이곳에서는 이른바 노랑머리들도 보고 하늘을 찌를 듯 높은 건물들과도 마주하게 됩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영어로 된 표지판들이 죄다 올림픽대로, 시청, 강남역, 압구정동으로 느껴지는 걸 보면 저도 이제는 이곳 생활에 푹 젖어 든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남들은 일부러 돈 들이고 시간 들여 찾아온다는 오페라하우스, 하버브리지, 달링하버를 우리는 1년에 채 한번도 안 찾고 사는 것 같습니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서 아내 이름으로 OPAL 카드를 하나 더 신청했습니다. ‘타보니 좋아서아내에게도 트레인 이용을 권한 겁니다. 가끔씩은 아내와 함께 트레인도 타고 페리도 타면서 여기저기를 다녀보고 싶어서이기도 합니다.

 

우선은 다음 주쯤 아내의 손을 잡고 시티 구경부터 한번 해야겠습니다. 오랜만에 오페라하우스 앞에도 가보고 달링하버도 거닐어봐야겠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분위기 있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폼(?)잡고 칼질도 해보고 싶지만 아무래도 우리에게는 얼큰한 해물탕에 쏘주 몇 잔이 더 편안할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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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 10 1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