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이 기다려지는 이유 매주 걷는 똑같은 코스인데도 유난히 힘든 날이 있습니다. 그런 날은 왠지 모르게 다리에서 힘도 빠지고 숨도 더 차는데다 지루하기까지 합니다. 그럴 때면 그냥 앞사람의 뒤축만 보고 묵묵히 걷는데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면 컨디션도 좀 나아지고 어느새 목적지에
도달해 있곤 합니다. “참 희한해요. 3년 넘게 걷고
있는데도 매주 이렇게 힘이 드니….” 한 선배회원의 이야기에 아내와 저도 100% 공감을 표합니다. 우리도 이제 2년이 다돼가는데 여전히 헉헉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토요일 아침에 이렇게 걷고 나면 몸도 마음도 개운해져요. 어쩌다 산행을 빠지게 되면 일주일 내내 찌뿌둥하다니까요.” 이 또한
100% 공감이 가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이미 산행에
깊숙이 중독이 돼있는 겁니다. 우리가 세 시간 반 남짓 걷는 코스가 원래 업 다운이 심한 곳이긴 하지만
갈 때보다는 돌아올 때가 조금 더 힘이 드는 것 같습니다. 그 첫 번째 고비는 반환점을 돌아 이내 만나게
되는 가파른 오르막길입니다. 그곳을 10분 가까이 헉헉대며
오르다 보면 누군가가 지은 ‘깔딱고개’라는 별명(?)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렇게 힘찬 심장박동을 느끼며 끝까지 올라와
시원한 물을 들이켤 때의 상쾌함은 흘린 땀의 값어치를 충분히 합니다. 한참을 더 걷다가 마지막 10여분을
남기고 만나는 오르막길이 다시 한번 우리를 살짝 힘들게 만듭니다. 그곳은 아내와 제가 처음 산행을 시작한
날 아주 고전을 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살을 뺀다고 계속 저녁을 안 먹은 데다가 전날 저녁은 물론 당일 아침까지
굶고 겁 없이 도전했던 산행 첫날, 우리는 깔딱고개는 어찌어찌 잘 올라왔는데 그 마지막 오르막 코스에서
퍼지고 말았습니다. 몇 걸음 걷고는 멈추고 또 몇 발짝 움직이다가는 다시 주저앉고….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용이(?) 됐습니다. 여전히 힘듦을 느끼기는 하지만 가끔은 멀리까지 눈을 돌려 멋진 경치를 음미하기도 하고 구름 한 점 없는 파란하늘을
여유롭게 올려다보기도 합니다. 사방에서 뿜어져 나오는 나무 냄새, 숲
냄새도 가슴 깊이 받아들입니다. 저는 산행에서 항상 대열의 맨 뒤에서 걷습니다. 선두그룹의 남성회원들을 따라가다가는 뱁새가 황새를 쫓는 꼴이 됩니다. 저보다도
나이가 일곱 살, 심지어는 열한 살 많은 분까지 무슨 특수부대 출신들처럼 휙휙 날아다니기 때문입니다. 몇 번 그분들과 보폭을 맞추다가 숨이 턱에까지 차는 경험을 한 이후로는
편안하게 후미그룹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런 생각과 저런 구상을 하며 제 페이스에 맞게 편안히 걸을
수 있고 제 나름대로는 산행대열의 맨 끝을 책임진다는(?) 생각도 들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 앞에서 걷는 여성회원들의 대화를 본의 아니게 엿듣게(?) 되는 경우가 종종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저는 그분들의 이야기
소리와 깔깔대는 소리에서 아주 오래 전 단발머리에 하얀 칼라(Collar)가 달린 교복을 입은 여고생들의
모습을 떠올리곤 합니다. 이웃학교 남학생 이야기, 교회오빠
이야기, 교생선생님 이야기, 떡볶이 이야기를 하던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자식들 사는 이야기, 손주들 커가는 이야기, 텃밭
가꾸는 이야기, 건강 이야기 등을 하고 있지만 그분들에게는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까르르 대던 여고시절의
감성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렇게 네 시간 가까이를 함께 한 우리는 점심시간 무렵 다음 주를 기약하며
각자 집으로 향합니다. 차를 출발시키며 벌써 다음 주 토요일이 기다려지는 건 우리의 건강을 지켜주는
산이 좋아서 그리고 늘 서로를 챙기며 배려하는 좋은 사람들이 그 속에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 김태선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