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전도 굴욕… 곤룡포 대신 소복을 입고, 풀어헤친 머리에 맨발차림으로 청나라 왕 앞에 머리를
조아린 조선의 임금은 ‘삼배구고두례 (三拜九叩頭禮: 세 번 절할 때마다 세 번씩 머리를 땅에 찧도록 하는 굴욕적인 의식)를
행합니다. 평소 ‘만주족 오랑캐’라 일컬으며 업수이
여기던 청나라 왕 홍타이지 앞에 무릎을
꿇은 조선의 16대 임금 인조의 이마에는 선혈이 낭자합니다. 삼전도
굴욕… 1637년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수도 한양을 빼앗기고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던
인조가 59일만에 그곳을 나와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항복의 예를 행한 것을 의미합니다. 지난 화요일 밤, 한국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치욕의 순간으로 기록돼 있는 삼전도 굴욕이 한국 MBC TV월화드라마 ‘화정’을
통해 1분여 동안 재현됐습니다. 비록 드라마였지만 역사에 근거를
둔 엄연한 사실이기에 무능한 임금이 치르는 처절한 대가는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피눈물과 함께 억장이 무너지는 고통을 느끼도록 했습니다. 명나라와 청나라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며 중립외교를 펼치던 광해군을 쫓아내고 임금 자리에 오른 인조는 명나라는 받들고 청나라는
배척하는 이른바 ‘친명배청’ 외교정책을 펴다가 그 같은 굴욕을
당한 겁니다. 인조의 위기에는 희대의 간신으로 일컬어지는 김자점을 비롯한 부패한 관료들까지 더해져 수백 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를 무능한
왕으로 지탄 받도록 하고 있습니다. 드라마 화정에서 만든 강주원이라는 가상의 인물 또한 나라를 망치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합니다. 그는 김자점과 함께 나라는 안중에도 없이 자신과
가문, 그리고 당파의 이익을 위해 나라를 배신하고 팔아먹는 일을 서슴지 않습니다. 나라가 존망의 위기에 처해 있음에도 자신들의 안위와 이익만을 좇는 사람들….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 ‘나라와 국민’을 입에 달고 살다가도 한 순간에 돌변하는 정치인들, 기업인들의 모습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한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다른 한쪽에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는 ‘못난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시대를 넘어 희망의 등불은 꺼지지
않는 모양입니다. 잘못된 것은 버리고 좋은 것은 본받아야 하는데 그게 그렇게도 어려운가 봅니다. 2, 30대 한창 가슴이 뜨겁던 시절 우리는 “이 나라 정치가 바로
서려면 65세 이상 정치인들이 다 죽어야 한다”고 울분을
토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정의를 외치며 분개하던 세대들이 정치판의 위쪽에 서있는 지금, 달라진 건 크게 없는 것 같아 안타까움이 더 합니다. 표를 얻기
위해, 환심을 사기 위해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을 입에 달고 사는 그들에게 진정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들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당 의원임에도 바른 말, 쓴 소리를 일삼는
진상필 의원을 향해 국민당의 친청계, 반청계 의원들이 똘똘 뭉쳐 그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습니다. 그게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한다는 그들의 진짜 모습입니다. 그저 드라마의
한 장면으로 치부하기에는 현실과 너무도 많이 닮아 있기에 흥분이 쉽게 가시지 않습니다. 아울러 남의 먹이를 훔쳐먹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는 하이에나 같은 존재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양아치 짓도 마다 않는 쓰레기 같은 존재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입니다. ********************************************************************** 김태선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