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씨가 기분 좋은 이유는… “어휴, 열 받아! 새 차 뽑아 갖고 딱 이틀 만에 당한 거잖아. 멀쩡히 지나가던 그
아줌마가 갑자기 내 쪽으로 확 들어온 거야. 조수석 문짝이랑 앞 펜더까지 왕창 다 나갔지. 그 아줌마 완전초보더라구. 생각할수록 아깝고 속 쓰려. 아, 짜증나!” 퇴근 후 직장동료들 앞에서 한참 열을 올리던 민철씨는 소주를 연거푸 세
잔 들이킵니다. 열 받아 마시는 술은 독이라던데…. 하지만
애지중지하던 새 차가 단 이틀 만에 그 모양이 됐으니 민철씨로서는 그럴 만도 하겠습니다. “아, 글쎄 그렇다니까. 이 아줌마가 느닷없이 들이받은 거야. 황당 그 자체지. 보험사에서도 1백퍼센트 그 아줌마 잘못이라 하더라구. 차야 2주 후면 수리돼서 나오겠지만 어제 뽑은 새 찬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구.” 집에 돌아온 민철씨는 가족들 앞에서 낮에 있었던 자동차 사고에 대해 다시
한 번 열변을 토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또 술 잔에 손이 갑니다. “야, 너 사고 당했다며? 어쩌다 그랬어? 어디서 그런 거야?
차는 얼마나 망가진 거야? 다친 덴 없어?”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여기저기에서 민철씨의 자동차 사고 얘기를 계속합니다. 물론 다들 민철씨의 사고가 걱정되고 안타까워서 하는 얘기들이겠지만 어쩐
일인지 사고 얘기를 거듭할수록 민철씨의 속상함과 안타까움, 그리고 분노는 그 크기를 더해가고 있었습니다. “와! 그 짜릿함이란… 수비가 멈칫하는 순간 상호가 번개처럼 달려들어 공을 가로채더라구. 두
명을 제치는가 싶었는데 곧바로 네트가 출렁하는 거야. 청룡FC 같은
강팀과 0대 0으로 비기는 것도 기적이었는데 우리가 걔들을
이기다니… 그것도 경기종료 직전에 말이야. 상호가 영웅이야, 영웅. 자, 우리의 영웅을
위하여 건배!” 아무리 생각해도 신나는 일이었습니다. 동료들과
얘기를 해도, 가족들과 얘기를 해도, 누구와 몇 번을 얘기해도
확실히 기분 좋은 일이었습니다. 공부대신 축구를 택한 상호씨를 못마땅해 하던 부모님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았습니다. “내가 진작부터 알아봤다니까. 상호
너는 워낙 부지런하고 악착 같아서 꼭 일낼 줄 알았어. 청룡FC 애들
지금 완전히 초상집 분위기겠다. 우리, 내친 김에 이번 주
토요일 결승전에서 백호FC까지 꺾고 우승컵 들어올리자구!” 다음 날 상호씨는 선배선수에 의해 또 한 차례 영웅이 됐습니다. 연습게임을 하는 동안 몸이 한없이 가볍게 느껴졌고 결승전에서도 잘 해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솟았습니다. 참 희한한 것은,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은 자꾸자꾸 얘기할수록 기분이 좋아지고 엔돌핀도 팍팍 솟아납니다. 반면 민철씨의 사고처럼 안
좋은 일은 얘기를 거듭하면 할수록 짜증과 스트레스가 더해집니다. 아무런 잘못도 없이 황당한 사고를 당한 민철씨로서는 당연히 억울하고 속이
쓰릴 겁니다. 하지만 계속 그 일로 속을 태우는 건 현명치 않습니다.
이미 벌어진 일이고 망가진 차가 새 차가 돼 돌아올 수는 없습니다. 나쁜 일일수록 짧게 담아두는 게 좋습니다.
“그래도 그만한 게 다행이야. 내 몸 안 다친 게 어디야?”
이렇게 스스로를 달래며 빨리 그 스트레스에서 빠져 나와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 결정하고 행하기 전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일단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철저히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지만 혹 안 좋은 결과가 나오더라도 그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그것을 경험으로 그보다 더 좋은 일을 만드는데 진력하는 게 더 중요하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서 받은 가르침입니다. 물론,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 같은 가르침을 그대로 주고 있습니다. ********************************************************************** 김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