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2

제목상호씨가 기분 좋은 이유는… #7262022-07-23 20:57

상호씨가 기분 좋은 이유는

 

어휴, 열 받아! 새 차 뽑아 갖고 딱 이틀 만에 당한 거잖아. 멀쩡히 지나가던 그 아줌마가 갑자기 내 쪽으로 확 들어온 거야. 조수석 문짝이랑 앞 펜더까지 왕창 다 나갔지. 그 아줌마 완전초보더라구. 생각할수록 아깝고 속 쓰려. , 짜증나!”

 

퇴근 후 직장동료들 앞에서 한참 열을 올리던 민철씨는 소주를 연거푸 세 잔 들이킵니다. 열 받아 마시는 술은 독이라던데…. 하지만 애지중지하던 새 차가 단 이틀 만에 그 모양이 됐으니 민철씨로서는 그럴 만도 하겠습니다.

 

, 글쎄 그렇다니까. 이 아줌마가 느닷없이 들이받은 거야. 황당 그 자체지. 보험사에서도 1백퍼센트 그 아줌마 잘못이라 하더라구. 차야 2주 후면 수리돼서 나오겠지만 어제 뽑은 새 찬데이게 무슨 날벼락이냐구.”

 

집에 돌아온 민철씨는 가족들 앞에서 낮에 있었던 자동차 사고에 대해 다시 한 번 열변을 토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또 술 잔에 손이 갑니다.

 

, 너 사고 당했다며? 어쩌다 그랬어? 어디서 그런 거야? 차는 얼마나 망가진 거야? 다친 덴 없어?”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여기저기에서 민철씨의 자동차 사고 얘기를 계속합니다.

 

물론 다들 민철씨의 사고가 걱정되고 안타까워서 하는 얘기들이겠지만 어쩐 일인지 사고 얘기를 거듭할수록 민철씨의 속상함과 안타까움, 그리고 분노는 그 크기를 더해가고 있었습니다.

 

! 그 짜릿함이란수비가 멈칫하는 순간 상호가 번개처럼 달려들어 공을 가로채더라구. 두 명을 제치는가 싶었는데 곧바로 네트가 출렁하는 거야. 청룡FC 같은 강팀과 0 0으로 비기는 것도 기적이었는데 우리가 걔들을 이기다니그것도 경기종료 직전에 말이야. 상호가 영웅이야, 영웅. , 우리의 영웅을 위하여 건배!”

 

아무리 생각해도 신나는 일이었습니다. 동료들과 얘기를 해도, 가족들과 얘기를 해도, 누구와 몇 번을 얘기해도 확실히 기분 좋은 일이었습니다. 공부대신 축구를 택한 상호씨를 못마땅해 하던 부모님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았습니다.

 

내가 진작부터 알아봤다니까. 상호 너는 워낙 부지런하고 악착 같아서 꼭 일낼 줄 알았어. 청룡FC 애들 지금 완전히 초상집 분위기겠다. 우리, 내친 김에 이번 주 토요일 결승전에서 백호FC까지 꺾고 우승컵 들어올리자구!”

 

다음 날 상호씨는 선배선수에 의해 또 한 차례 영웅이 됐습니다. 연습게임을 하는 동안 몸이 한없이 가볍게 느껴졌고 결승전에서도 잘 해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솟았습니다.

 

참 희한한 것은,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은 자꾸자꾸 얘기할수록 기분이 좋아지고 엔돌핀도 팍팍 솟아납니다. 반면 민철씨의 사고처럼 안 좋은 일은 얘기를 거듭하면 할수록 짜증과 스트레스가 더해집니다.

 

아무런 잘못도 없이 황당한 사고를 당한 민철씨로서는 당연히 억울하고 속이 쓰릴 겁니다. 하지만 계속 그 일로 속을 태우는 건 현명치 않습니다. 이미 벌어진 일이고 망가진 차가 새 차가 돼 돌아올 수는 없습니다.

 

나쁜 일일수록 짧게 담아두는 게 좋습니다. “그래도 그만한 게 다행이야. 내 몸 안 다친 게 어디야?” 이렇게 스스로를 달래며 빨리 그 스트레스에서 빠져 나와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 결정하고 행하기 전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일단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철저히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지만 혹 안 좋은 결과가 나오더라도 그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그것을 경험으로 그보다 더 좋은 일을 만드는데 진력하는 게 더 중요하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서 받은 가르침입니다. 물론,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 같은 가르침을 그대로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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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 10 1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