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 마디로 천냥 빚 갚기?! “내 돈 내놔! 내 돈! 이 나쁜 놈아, 네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벼룩의 간을 빼 먹지, 그 돈이 어떤 돈인데 그걸 떼먹어?” 강 사장의 멱살을 잡은 이 사장의 손이 부르르 떨립니다. 주변에
몰려 있던 다른 사람들도 일제히 강 사장을 향해 언성을 높입니다. 평소 비즈니스를 통해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이들이 틀어지게 된 것은 강
사장 회사가 급격한 경영난으로 거래대금을 지급할 수 없게 되면서부터였습니다. 물건을 대주고 돈을 못
받은 것도 억울한데 강 사장마저 한 마디 말도 없이 잠적해버렸다는 데에 이들의 분노는 극에 달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고성 끝에 강 사장은 그들로부터 작은 폭행까지 당합니다. 딱히 변명의 여지도 없었던 강 사장으로서는 그들의 거친 행동을 고스란히 받아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방식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로서는 그렇게라도 분풀이를 하고 싶었을 겁니다. 사업을 하다가 이런저런 어려움에 시달리다 보면 속된 말로 ‘잠수’를 타버리는 게 가장 속 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자취를 감춰버린다 하더라도 당사자는 늘 불편한 마음으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같은 하늘을 두고 사는 한 언제 어디에서 마주칠지 모르는 일이고 요즘은 해외로 도피를 한다 해도 옛날처럼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우리 교민사회에서도 느닷없이 가게 문을 닫고 사라지는 경우나 이른바 계
파동 등으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올 때가 종종 있습니다. 특히 ‘그럴
리가 없다’고 굳게 믿었던 사람한테 이런 일을 당하면 그 실망감과 당혹감은 몇 배로 크게 다가오게 됩니다. 어? 저 사람? 그 사람이 분명했습니다. 얼마 전,
아내와 함께 점심을 먹다가 우연히 보게 된 그 얼굴… 몇 년 전 광고비 5백 65불을 안 주고 연락이 두절됐던 그 사람이었습니다. 평소 저와도 여러 차례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던 사람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공장 문을 닫고 연락을 끊어버린 그 사람을 몇 달 후 한
정육점에서 우연히 만난 적이 있습니다. 부인과 함께 고기를 사러 안으로 들어오던 그 사람은 저를 보더니
슬며시 돌아서서 정수기 쪽으로 가는 척하다가 얼른 밖으로 나가 버렸습니다.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그냥
미안하다고 한 마디 하면 될 것을…. 그리고는 정말 한참 만에 그 사람을 다시 만난 겁니다. 저보다 먼저 와 있었던 그 사람은 우리와 대각선으로 앉아 있었기에 먼저 저를 봤을 겁니다. 일행들과 점심을 먹던 그 사람은 계속 입 아래쪽을 손으로 가리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그 사람 얼굴을 못 알아볼 리는 없는 상황인데도…. 결국
그 사람은 제가 국물을 떠먹는 사이에 식당을 빠져 나가버렸습니다. 비단 광고비뿐만 아니라 세상을 살다 보면 본의 아니게 돈으로 인해 실수
아닌 실수를 하게 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돈이 거짓말하는 것이지 사람이 거짓말하는 건
아니고,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게 돈입니다. 남에게 빚진 돈은 그 금액이 크든 작든 반드시 갚는 게 도리입니다. 당장 그럴 상황이 못 되면 “정말 미안하다. 나중에 상황이 되는 대로 꼭 갚겠다”고 이해와 용서를 구하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한 마디 말도 없이 속된 말로 ‘쌩
까고 잠수를 탔다가’ 위와 같은 모습들을 보이는 건 결코 현명한 방법이 아닙니다. ‘말 한 마디에 천냥 빚을 갚을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 때문에 그날 점심에 먹은 돼지국밥은 영 편치가 않았습니다. ********************************************************************** 김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