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2

제목“저 친구… 별로인데…” #6562022-07-23 18:22

저 친구별로인데…”

 

, 그거 정말 싱싱한 거예요. 다 팔고 이제 딱 두 박스 남았어요. 얼른 가져 가세요. 5불이면 거저예요. 거저.” 열댓 살쯤 돼 보이는 파란 눈의 사내아이가 열심히 설명을 합니다.

 

이게 이파리만 좀 이래 보이지 전체적으로는 아주 싱싱한 거예요. 이거 보세요. 아주 싱싱하죠?” 그 아이는 줄기 쪽을 펴 보이며 뷰티풀을 연발했습니다.

 

얼마 전, 플레밍턴 마켓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아내와 저는 가끔 플레밍턴 마켓을 찾곤 합니다. 좋은 물건을 비교적 싼값에 살 수 있는 토요일 오후 한 시쯤이 우리가 그곳을 찾는 단골시간입니다.

 

그 시간쯤 되면 상인들도 남은 물건들을 얼른 처리하고 싶어 가격을 많이 떨어뜨리게 됩니다. 그날도 여러 가지 과일과 채소들을 박스단위로 담고 오랜만에 간장게장을 담가먹자고 생선코너를 돌아 나오는 길이었습니다.

 

아침마다 셀러리로 생즙을 만드는 아내가 셀러리 박스를 보고 잠시 멈추자 그 아이가 잽싸게 달려든 겁니다. 실제로 그 셀러리는 이파리 부분만 아주 약간 시들해(?) 보였을 뿐 줄기 부분은 아주 싱싱하고 좋았습니다.

 

우리는 셀러리 한 박스를 5불에 샀습니다. ‘Thank you!’를 연발하며 활짝 웃어 보이는 그 아이를 뒤로 하며 아내와 저는 새삼 어린 아이가 참 대단하다, 대견하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집에 와서 보니 셀러리 박스에 표기된 회사이름 끝에는 ‘…Sons’라는 명칭이 붙어 있었습니다. 가족이 대를 이어 농장을 운영하는 집안인 듯싶었고 그 사내아이는 아빠를 따라 플레밍턴 마켓에 나온 것 같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그 같은 열정을 갖고 있으니 훗날 그 아이가 회사를 이끌게 되면 더 큰 회사로 성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좀 도와 드릴까요?” 아내와 제가 여러 종류의 타일 앞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2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한 백인여성이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다음 달에 새로 입주할 사무실의 입구, 주방, 화장실 등의 리노베이션에 쓸 타일이 필요해 며칠 전 스미스필드에 있는 한 대형 타일숍을 찾았습니다. 그 여성은 우리의 용도에 맞는 적절한 샘플들을 보여주기 위해 널찍한 숍 여기저기를 분주하게 돌아다녔습니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세요?” 우리 옆을 지나던 중년남성이 물었습니다. “, 지금 저 여자분이 우리를 도와주고 있습니다라는 나의 대답에 그 남성은 , 저 친구요? 저 친구별로인데…” 하고 씩 웃으며 우리를 지나쳤습니다.

 

타일 샘플들을 이것저것 챙겨 들고 그를 스쳐 우리에게 돌아온 그 여성은 우리 아빠예요. 늘 저렇게 짓궂다니까요…” 하며 유쾌하게 웃었습니다. “저 친구별로인데…” 하던 그 남성은 그 숍의 사장이었고 우리에게 던진 말과는 달리 그의 얼굴에는 딸에 대한 신뢰가 가득했습니다.

 

우리는 거기에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타일들을 기분 좋게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앞의 플레밍턴 마켓에서의 사내아이도 그렇고 타일숍에서의 딸내미도 그렇고 아빠들에게 참 든든한 힘이 돼주고 있다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들었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열아홉 살 때부터 <코리아 타운>에서 저와 함께 하고 있는 딸아이 생각이 문득 났습니다. “에이, 아직 어린데 할 수 있겠어?” 하는 저에게 글쎄, 한 번 시켜보라니까하며 웃던 아내의 모습도 기억납니다. 7년 전, 어린 나이에 카메라와 취재수첩을 들고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던 딸아이에게서 어느새 저는 <코리아 타운>만큼의 노련미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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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