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보드?! 객석 여기저기에서 눈물
훔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간간이 짧은 탄식과 한숨 소리가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엄일섭씨는 밝은 표정으로 ‘코보드’ 연주에 몰두하고 있었고, 부인 이현숙씨도 편안한 모습으로 코보드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며 남편 곁을 지켰습니다. 엄일섭씨가 다섯 곡의 성가를
코보드로 연주하는 중간중간 그가 태어나서 살아오는 동안 겪었던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한 여성봉사자에 의해 내레이션 됐습니다. 올해 마흔 여덟 살인 엄일섭씨는
한국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코보드’라는 이름으로 친숙한
사람입니다. 태어난 지 8개월 만에 뇌성마비 판정을 받은
그는 가족에까지 무거운 짐이 되며 살아야 한다는
회의에 몇 차례 약을 먹기도, 문고리에 줄을 걸고 목을 매기도 했습니다. 그랬던 그가 ‘새로운 삶’을 통해 고입검정고시와 대입검정고시를 거쳐 세계사이버대학
사회복지과를 졸업하고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까지 취득했습니다. 장애인
친구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였습니다. 관객들은 그가 한 치의
틀림도 없이 완벽하게 코를 이용해 키보드를 연주할 때마다 아낌 없는 박수를 보냈고, 그가 살아온 이야기들을
들으면서는 저마다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습니다. 엄일섭씨는 시드니호스피스회와
호주밀알장애인선교단이 주최한 ‘암환우와 장애우를 위한 희망의 밤’에
참석하기 위해 불편한 몸을 이끌고 한국에서 날아왔습니다. 그리고 지난 토요일, 자신의 이야기와 함께 다섯 곡의 성가를 코보드로 연주했습니다. 앵콜곡으로
‘사랑으로’를 연주할 때는 관객 모두가 한마음이 돼 합창하는
가슴 뭉클한 광경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엄일섭씨에 앞서, 전혀 예기치 못했던 말기 대장암을 삶에 대한 강한 의지로 극복해낸 강성철씨 또한 커다란 감동을 선사한 그날의
또 다른 주인공이었습니다. 그는 암과 싸워 이기기 위해서는 식이요법, 운동, 가족의 희생도 중요하지만 희망과 용기, 그리고 믿음으로 말미암은
삶에 대한 태도의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강성철씨는 ‘누우면 죽고 움직이면 산다’는
생각으로 아침 저녁으로, 비가 오면 우산까지 쓰고 나가 운동을 하며 암과 적극적으로 싸웠습니다. ‘이제 1년 정도 남았다’는
말을 들은 암환자가 그것이 통계적인 숫자일 뿐임에도 자신의 삶에 그대로 적용하는 걸 보면서 ‘생각과
마음을 굳건히 지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됐다고 했습니다.
엄일섭, 강성철 두 사람이 우리에게 공통적으로 들고 온 메시지는 꿈과 희망, 그리고
용기와 사랑이었습니다. 절대자를 믿고 의지하는 종교의 힘도 그들에게는 큰 힘이 됐습니다. 엄일섭, 강성철 제씨가 주는 용기와 사랑의 메시지는 비단 장애를 갖고 있거나 암 진단을 받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꿈과 희망 그리고 용기와 사랑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두 사람의 자전적 이야기를 이번 호
<코리아 타운>에 실었습니다. 엄일섭씨는 자신의 이야기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이번 호주
방문에서 바라는 소망이 있습니다. 암환우와 장애인 여러분, 그리고
생활에 지치신 여러분, 여러분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일어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를 불쌍하게 보지만 저는 여러분보다 더 건강하다는 자부심을 갖습니다. 육체는 건강하지만 더 많은 돈, 지위, 권력, 욕망을 추구하느라 염려와 근심 속에서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는
사람이 드문 것 같습니다… 현재의 생활 속에서 절대 움츠리지 마시고 더욱 용기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 김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