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2

제목“미친 거 아니야?” #5152022-07-23 17:05

미친 거 아니야?”

 

아내가 9백만 원으로 집을 사겠다고 나섰을 때 저는 물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던진 말이었습니다. 9백만 원, 그것도 손에 쥐고 있는 돈도 아닌 전세보증금만 믿고 그런 무모한(?) 계획을 세우다니….

 

하지만 결과부터 얘기하자면, 아내는 전세보증금 9백만 원으로 집을 샀습니다. 서울에 있는 집은 아니었고 경기도 부천,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바짝 붙어 있는, 서울의 위성도시로 막 떠오르는 곳이었습니다.

 

집을 사겠다는 결심을 확고히 한 아내는 주말이면 저를 끌고(?) 여기저기를 다녔습니다. 그 돈으로는 서울은 꿈도 꿀 수 없음을 알고 있었던 터라 아내는 주로 경기도 부천, 구리, 부평 등 서울과 가까운 지역들을 꼼꼼히 뒤졌습니다.

 

당시에는 우리 차도 없었고 여기저기를 참 많이, 힘겹게 돌아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극성을(?) 떤 결과 우리는 막 뼈대가 올라가고 있는 부천의 소형 아파트단지 열 아홉 평짜리 아파트를 계약할 수 있었습니다.

 

그 아파트의 분양가격은 2 2 60만원. 아내는 여유 자금이 있었던 친척에게서 계약금을 빌렸고, 중도금은 전세를 살고 있는 집 주인 아주머니가 전세보증금의 일부를 미리 빼주는 덕에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곧 바로 주택은행에 25년 상환 주택융자 신청을 하는 등 이런 노력과 저런 수고를 들인 결과 우리는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1988, 새로 지은 내 집에 입주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무일푼 아니, 아버지가 사업 때문에 남겨 놓고 가신 집 한 채 값 정도의 빚을 다 갚고 아내의 억척(?) 덕분에 우리는 거짓말처럼결혼 4년 만에 내 집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자기야, 우리집 좀 더 빨리 사야 될 거 같아…” 아이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는 꼭 집을 사겠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하던 아내가 내 집 마련을 서두른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큰 아이가 아장아장 여기저기를 뛰어다닐 무렵, 우리는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서 집 주인과 마루를 가운데 두고 전세를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닐곱 살쯤 된 집 주인 아들 둘이 우리 큰아이가 자기네 방 쪽으로 가자 사정 없이 밀쳐 넘어뜨리는 모습을 작은아이를 업고 있던 아내가 봤던 겁니다.

 

그로부터 채 두 달이 안 돼, 아내는 약간의 무리를 해서집 주인과 같이 살지 않는 단독전세로 집을 옮겼고, 다시 얼마 후 마침내 내 집 마련 작전을 감행했던 겁니다.

 

그렇게 마련한 첫 집에서 2년을 살다가 아내는 청약저축을 통해 신도시 32평형 아파트를 따냈습니다. 살고 있던 집이 두 배로 오르면서 다시 한 번 점프를 시도한 겁니다.

 

한국이나 호주나 내 집 마련은 참 만만치 않은 명제입니다. 월급쟁이들이 아무리 허리끈을 졸라매고 돈을 모아도 집 값은 자꾸자꾸 멀어지기만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런 쪽으로는 많이 찌질한 반면, 아내는 참 많이 현명한 것 같습니다. 저한테서 가끔 복부인이라는 놀림을 받는 아내가 갖고 있는 내 집 마련을 위한 필수요소는 세 가지 - 정보에 밝아야 한다,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한다, 감당할 수 있는 무리를 해야 한다 - 입니다.

 

아내는 무슨 일이든 막연히 기다리기만 해선 안 되고 기회가 올 때 놓치지 말고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복부인(?) 아내는 지금 호주에서도 그 같은 전략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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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 10 1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