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에 관한 짜증나는 기억들… “에이! 저런 뻔뻔한…” 얼마 전, 한국 MBC 뉴스데스크를
보고 있던 제 입에서 저도 모르게 이런 소리가 튀어나왔습니다. 한국의 6.4 재보궐선거가 실시되기 전 날 밤이었는데, 여권의 한 실세가
선거구를 방문해 자기 당 후보 지지를 호소하다가 갑자기 길바닥에 넙죽 엎드려 ‘큰절’을 하는 모습이 나왔습니다. 정말이지 뻔뻔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거 전에는 한 표라도 더 얻어내기 위해 ‘저런
짓까지’ 하지만 대부분은 당선이 되는 순간부터 내가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돌변해버립니다. 참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그건 건 변할 수 없나 봅니다. 제가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대통령
선거를 했던 건 6.10 민중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가 쟁취된 1987년이었습니다. 그때 여권에서는 노태우 후보가
나섰고 야권에서는 이른바 김대중-김영삼-김종필의
‘3김씨’가 저마다 승리를 확신하며 뛰어들었습니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3김이 아닌 1김이
돼서 군부독재를 종식시켜줄 것을 그토록 염원했건만…. 결국 노태우 후보의 승리로 싸움은 끝났고, 저는 그때 3김 중 가장 당선 확률이 낮은 사람에게 ‘개나 먹어라’ 하는 마음으로 표를 던졌습니다. 기권을 하면 제 표가 여당으로 가는
게 싫어서였습니다. 하지만 이후부터는 저의 기권표가
여당으로 가든지 말든지 아예 신경을 껐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씀 드리면, 저는 이듬해 국회의원 선거에서 또 한 번 ‘사기’를 당했습니다. 신물이 날 대로 난 상황이었지만
군부독재시절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민주인사들을 변론해온 인권변호사 한 분이 제가 사는 동네에서 야당 국회의원 후보로 나왔습니다. 그 분은 주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금배지를 달았습니다. 하지만… 그 분도 예외 없이 금세 변하고 말았습니다. 동료의원들과 폭탄주를
심하게 마신 그는 국정감사에서의 횡설수설은 물론, 엄하게 따지고 들어야 할 해당 장관에게 만취상태에서 90도로 큰절을 하는 추태까지 보이며 언론의 스타로(?) 떠올랐습니다. 한심한 것들… 그게 전부였습니다. 국민의 손에 의해 뽑힌 사람들은
선거기간 동안만 머슴 또는 그 이하의 자세로 국민을 대할 게 아니라 당선된 후에도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가장 기초적인 그같은 원칙도 모르면서 어찌 나라 살림을 한다는 건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참 이해가 안 됩니다. 시드니에 와서 저는 실로 20년 가까이 만에 선거를 해봤습니다. 시드니한인회장 선거에서 우리
네 식구는 한인사회를 위해 가장 열심히 뛸 것 같은 후보에게 표를 던졌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이
여전히 답답한 것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의 많은 국민들도 지금
이와 비슷한 마음일 것입니다. 민주정치에서 가장 무서운 건 반대자가 아닌 ‘무관심 그룹’이라고 합니다. ‘그
놈이 그 놈’이라는 인식을 지워주지 않는 한 이 같은 무관심 그룹은 민주주의를 한 없이 뒷걸음치게 만들
것입니다. 오는 9월, 호주 지방선거가 있다고 합니다. 호주는 선거를 안 하면 벌금을 내야 하기 때문에 그게 싫어서라도 선거를 할 겁니다. 한국처럼 속속들이 잘 알지는 못하겠지만, 우리 네 식구는 그들 중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가장 열심히 일할 것 같은 사람에게 표를 줄 것입니다. 이번 선거는 제발 ‘역시나 그 놈이 그 놈’이라는 ‘슬픈
생각’을 갖게 하지 않게 됐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가져
봅니다. ********************************************************************** 김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