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계약서? “아버지, 이제부터 제가 편안하게
모실게요. 맛있는 음식도 많이 해드리고 용돈도 매달 50만원씩
드릴 테니 혼자 외롭게 지내지 마시고 친구분들과 술도 드시고 여행도 다니시며 즐겁게 사세요.” 2년 전 부인과 사별하고 혼자 살고 있던 67세의
아버지에게 40대 아들이 찾아와 던진(?) 제안입니다. 다만, 아들의 이야기 속에는 ‘아버지가
갖고 계신 재산을 저에게 지금 물려주시면…’이라는 전제가(?) 들어
있었습니다. 강남의 좀더 큰 아파트로 옮기고 싶었던 아들은 아버지와 합치면 부족한 돈도
해결할 수 있고 아버지도 혼자 외롭게 살지 않아도 된다는 ‘좋은 생각’에
이르게 됐던 겁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아파트를 처분하고 이런저런 돈들을 모아 3억 5000만원을 아들에게 줬습니다.
이렇게 해서 아버지는 강남의 좋은 아파트에서 아들 내외 그리고 손주들과 함께 행복한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아들을 상대로 이른바 ‘불효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당초의 약속과 달리 매월 50만원씩의 용돈은 물론, 끼니도 제대로 챙겨주지 않았다는 겁니다. 어머니 제사도 지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 방의 전기장판까지 꺼버렸다는 게 아버지의 주장입니다. 물론, 아들의 이야기도 들어봐야
정확한 상황을 알 수 있겠지만 오랜 세월을 따로 살아왔던 만큼 라이프스타일도 서로 달랐을 것이고 크고 작은 일들로 부딪치다 보니 아버지가 짐이
됐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이 같은 경우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준 재산을 돌려받을 수 있는
확률은 높지 않다고 합니다. 사실을 입증할 서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한국에는 오래 전부터 ‘효도계약서’라는 게 존재한다고 합니다. 이 계약서 안에는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주는 증여재산에 관한 상세한 내역에서부터
재산을 물려받는 자식이 부모에게 해야 할 내용들이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고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증여 받은 재산을 부모에게 돌려준다는 내용까지
들어있습니다. 이를테면 한 달에 한번씩 부모님을 찾아 뵙는다, 용돈은 한 달에 50만원씩을 드린다, 일주일에 한번씩 외식을 시켜드린다, 일년에 한번씩 여행을 시켜드린다
등등. 한국인의 정서상 ‘부모 자식간에
어떻게 효도계약서를 작성하느냐?’는 입장도 있겠지만 전문가들은 계약서는 반드시 작성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꼭 ‘계약서’라는 용어는
쓰지 않더라도 ‘사랑하는 아버지께’ 혹은 ‘어머니께 드리는 글’ 이런 식으로라도 재산증여 내용과 그에 따르는
자식의 의무를 반드시 자필로 작성해 문서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주 오래 전, 지금 우리세대
즉, 1950년대에 태어난 세대들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식에게서 효도 받지 못하는 첫 번째 세대’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물론, 자식 나름이긴 하겠지만
작금의 사태들을 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닐 듯도 싶습니다. ‘어차피 자식에게 물려줄 재산, 조금 일찍 주지 뭐’ 하는 마음에 증여를 했다가 낭패를 겪게 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겁니다. 67세 아버지의 불효소송 이야기를 다룬 프로그램의 패널들은 “재산은 살아계시는 동안 끝까지 쥐고 계셔야 한다. 그렇게 해서 ‘인위적인 효도’라도 받으셔야 한다.
미리 다 줘버리면 결국 아들도, 며느리도, 딸도, 사위도 돌보지 않게 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TV를 보는 내내 씁쓸한 기분을 떨쳐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예쁜 액세서리를 보면 “이거 우리 엄마한테 잘 어울리겠다”며 집어 들고, 맛있는 음식을 보면 “우리 아빠 사다 줘야겠다”는 마음을 가진 예쁜 아들, 며느리, 딸, 사위들이
우리 주변에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 김태선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