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2

제목“또조?” #8472022-07-23 22:06

또조?”

 

88 서울올림픽이 한참이던 어느 날,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길을 지나던 중년남자 하나가 우리 앞에 멈춰 섰습니다. “, 괜찮으시면 아이 사진 좀 몇 장 찍었으면 하는데요….” 그 남자는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지정 공식 사진작가였습니다.

 

갓 네 살이 된 아들녀석이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동네 공원 여기저기를 누비는(?) 모습이 예뻐 보였던 모양입니다. 때마침 각종 꽃들까지 활짝 펴 아름다움이 더해진 공원에서 그 사진작가는 꽤 많은 양의 사진을 담아갔습니다.

 

아직 어린 녀석이 뒷짐을 지고 아장아장 걷는 모습은 우리가 보기에도 참 귀엽고 예뻤습니다. 항상 웃는 얼굴에 따뜻한 마음을 지닌 녀석은 길을 지나는 할아버지 할머니만 보면 손을 붙들고 집안으로 들어와 냉수라도 한잔 드려야 직성이(?) 풀리곤 했습니다.

 

더 어릴 적에도 엄마 아빠, 할머니가 바쁜 것 같다 싶으면 보행기를 타고 곁으로 다가왔다가도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저쪽으로 가곤 했습니다. 그렇게 혼자서 놀다가 우리가 한가해진 것 같으면 함께 놀아달라고 하던, 매우 속이 깊은 아이였습니다.

 

걷는 것보다는 뛰어다니는 것을 더 좋아하던 딸아이는 항상 웃는 얼굴에 밝은 성격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노래하고 춤추기를 즐겨 했던 탓에 가끔 엄마 아빠를 따라 포장마차 같은 델 가면 맑고 또렷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손님들의 박수갈채를 받곤 했습니다.

 

가수 이남이가 불러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울고 싶어라를 이 녀석은 어쩐 일인지 웃고 싶어라, 웃고 싶어라…”로 바꿔 열창했습니다. 머리에 빨간 리본을 꽂은 네 살 배기 여자아이가 부르는 울고 싶어라, 아니웃고 싶어라는 그렇게 동네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습니다.

 

사실 저도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함께 해주지 못한 무심한 아빠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위의 이야기는 어쩌다 아이들과 함께 했던 기억의 편린일 뿐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일곱 살, 다섯 살 때 시간이 이 상태로 멈췄으면 좋겠다는 지극히 이기적인 생각을 가진 적도 있지만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아내와 아이들 곁에 좀더 자주, 좀더 많이 있고 싶습니다.

 

많은 아빠들이 자기 자식 크는 건 잘 모르고 지내다가 자식의 자식 즉, 손주들 크는 걸 보며 진정한 자식사랑을 느끼게 된다는데 지금의 제가 그렇습니다. 한쪽 손을 잡아주면 제법 씩씩하게 걷는 에이든의 모습도, 혼자서 위태롭게 대여섯 걸음을 뒤뚱뒤뚱 걷는 모습도 너무너무 예쁩니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해석은 잘 안되지만 녀석은 그 작은 입을 한껏 오물거리며 계속 뭐라고 얘기를 해댑니다. 그리고는 눈을 찡긋하며 예의 그 살인미소를 날리면 말 그대로 심쿵입니다.

 

녀석은 요즘 또조?”를 잘 외칩니다. 과자를 맛있게 받아먹는 녀석에게 우리가 또 줘?” 하고 묻는 걸 녀석은 더 달라는 의미로 해석해 또조?” 하며 말끝을 올리는 겁니다. 입술을 동그랗게 말아서 또조? 또조?” 하는 녀석을 보면 정말이지 세상 모든 걸 다 주고 싶어집니다.

 

지난 주 목요일 저녁, 마감작업을 끝내고 집안으로 들어서는 저를 향해 에이든이 여느 때보다 훨씬 큰 소리로 아빠? 아빠!” 했습니다. 녀석을 안고 있던 아내가 박장대소를 했습니다.

 

매주 목요일 오후에는 제 엄마의 마감작업을 위해 우리 집에 와 있는 에이든은 사실 헷갈릴 수도 있겠습니다. 제가 가끔 아니 종종 에이든, 아빠한테 와라든가 두 손을 녀석에게 벌리며 아빠, 아빠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네가 내 아들이면 좋겠다라는 저의 혼잣말 속에는 에이든을 향한 무한사랑은 물론,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적 그렇게 못해준 것에 대한 미안함이 가득 배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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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 10 1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