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한치 회 “아빠, 뭐해?” 밤 열한 시
반이 넘은 시각, 딸아이에게서 뜬금없는 카톡이 날아왔습니다. “어, TV 보고 있지. 왜? 뭔
일 있어?”라는 저의 말에 딸아이는 “아니, 그냥… 근데 좀 있다가 오빠가 집에 잠깐 들를 거야. 뭐 줄 거 있대”라고 했습니다. 그날의
사건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5분쯤 후 우리 집 인터폰이 울렸습니다. 싱긋 웃으며 안으로 들어선 딸아이 신랑의 손에는 비닐봉지 한 개가 들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서는 세상에나… 고래만한(?) 한치 한 마리가 눈을 껌뻑거리고 있었습니다. 조금 전 딸아이 신랑 직장후배가 한치 낚시를 하고 왔는데 “형도 한 마리
먹어보라”며 딸아이 집으로 들고 왔다는 겁니다. 비닐봉지에는
신선도 유지를 위해 얼음까지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 힘들게 낚시를 해서 잡은 한치를 평소 좋아하는 직장선배한테 주고 싶어
밤길을 달려왔다니…. 그리고 더 고마운 건 그 귀한 한치를 자기들이 먹을 생각은 안하고 우리한테 넘겨준
딸아이 부부입니다. “아니에요. 저는 내일 아침 일찍 나가야 해서 회 먹을 시간이 없어요. 어머님
아버님 맛있게 드세요.” 우리에게 한치를 넘겨주는 것에 대한 딸아이 신랑의 해명(?)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한치 회의 찬스를 주기 위한 ‘억지해명’이라는 것을…. 그렇게 딸아이 신랑은 집으로 돌아갔고 아내와 저는 한밤의 깜짝 선물을 다듬기 시작했습니다. 호주의
물고기들은 한국의 그것보다 무조건 크기는 하지만 한치 이 녀석도 덩치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한국 한치가
그냥 길쭉한데 반해 이 녀석은 길고 옆으로 퍼져 뚱뚱하기까지 했습니다. 다듬어서 회를 쳐놓으니 몸통 한 큰 접시, 다리 한 작은 접시가 나왔습니다. 싱싱한 한치 회에 술이 빠질 수는 없습니다. 딸아이 부부에게 ‘인증샷’과 감사의 톡을 날리고 우리는 한치 회와 함께 하는 한밤의
술판을 시작했습니다. 살아 있는 녀석이라서 더했겠지만 살이 아주 단단한 데다가 달콤한 맛이 입에서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덩치가
워낙 커서 나중에 아내는 배가 불러 더 이상은 못 먹겠다며 젓가락을 내려놨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파티는
새벽 두 시 가까이까지 이어졌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고맙고 기분 좋은 일입니다. 어렵사리 잡았을 한치를 좋아하는 직장선배에게
주기 위해 밤늦게 먼 길을 달려온 착한 마음…. 그것도 총 두 마리를 잡았다는데 나머지 한 마리는 딸아이
신랑에게 준 한치의 절반 정도의 크기였다고 합니다. 게다가 자기들이 먹을 생각은 접어두고 그걸 엄마 아빠에게 넘겨준 딸아이 부부의 예쁜 마음…. 어쩌면
딸아이 신랑은 후배에게 자기들이 한치 회를 아주 맛있게 먹었다고 뻥을(?) 칠지도 모를 일입니다. 후배가 가져다 준 성의를 봐서라도…. 한치 회를 뜨면서 이걸 들고 아이들 집으로 갈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봤습니다. 하지만 이미 밤 열두 시가 다 됐고 내일 아침 네 시 반에 일어나야 한다는 딸아이 신랑의 얘기에 생각을 접었습니다. “만일 이 한치가
지금이 아니라 아까 한 여덟 시쯤 왔다면 애들이 어떻게 했을까? 1번 자기들끼리 먹는다, 2번 우리랑 함께 먹는다, 3번 우리한테 준다.” 저의 질문에 아내는 “우리랑 함께 먹자고 했겠지”라고 답했습니다. 제 생각도 그랬습니다. 귀한 한치 회이기 때문에 시간이 좀 일렀으면 아이들은 우리와 함께
하려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유난히도 맑고 순수한 피를 가진 우리 아이들은 그렇게 늘 우리를 살뜰하게
챙깁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기분 좋은 한치 회와 고마운 마음들로 우리의 그날 밤은 더 없이 행복, 행복, 또 행복했습니다. ********************************************************************** 김태선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