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2

제목두 명에서 여섯 명으로… #8292022-07-23 21:58

두 명에서 여섯 명으로

 

늘 그렇긴 했지만 설날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면 그 외로움은 더더욱 커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식구들은 물론, 멀리서 온 친척들과 함께 왁자지껄 떠들고 노는 걸 보면 참 많이 부러웠습니다.

 

부모님이 두 분 모두 이북출신이었던 터라 친척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고 제가 2대 독자였던 탓에 형제자매 또한 없었습니다. 게다가 아버님은 제가 열아홉 살 되던 해에 돌아가셔서 이 세상에는 어머니와 저 단둘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어머니와 마주앉아 먹는 떡국은, 송편은 늘 외롭고 쓸쓸하게 입안을 맴돌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스물두 살 철모르는 나이에 저한테 속아서 스스로 고생길을 자처한 아내가 새 식구로 합류하면서 우리 집은 조금씩 덜 외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어 아들녀석이 태어나고 딸아이가 생기면서 둘뿐이었던 우리 식구는 어느새 다섯 명이 돼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딸아이의 결혼으로 사위가 생기고 우리의 미소천사 에이든까지 더해져 이제는 우리 가족에게서도 제법 북적대는(?) 느낌이 납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딸아이보다 두 살 오빠인 아들녀석도 결혼을 해서 에이든 같은 미소천사가 하나나 둘 더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점입니다.

 

사실 저에게는 결혼 전 두 가지 꿈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형제자매가 많은 집으로 장가를 가서 처남 처제들 속에 파묻혀 지내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아들 둘, 딸 셋을 낳는 거였습니다. 장인장모의 사랑은 기본이었습니다. 그만큼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이 컸던 탓입니다.

 

지난 주 금요일, 제 생일은 생각지 않게 요란 뻑적지근했습니다. 코리아타운에서는 생일을 맞은 사람에게는 회사에서 생일케익을 하나 제공하고 각자 돈을 조금씩 모아 작은 선물을 해주며 함께 축하의 시간을 갖는 전통이(?) 있습니다. 다만 제 생일에는 그렇게 하지 않는 걸로 당부해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원칙이 깨졌습니다. 제 생일 하루 전날인 목요일 오후, 한참 호주뉴스 마감으로 정신이 없는 틈을 타 기습적으로(?) 코리아타운 사람들이 생일케익을 들고 제 책상으로 다가와 생일축하 노래를 부른 겁니다.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생일축하카드와 술고래(?)인 저를 위한 술 한 병까지 들고…. 아무래도 올해의 제 생일은 조금 특별하다고 여겨서 그렇게 반칙을 쓴 모양입니다. 그렇게 맑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코리아타운 가족들의 깜짝 생일파티는 그날 저에게 진한 감동을 줬습니다.

 

그리고 이튿날인 금요일 저녁에는 딸아이 부부와 아들녀석 그리고 에이든이 우리 집에 모여 질펀한(?) 생일축하 파티를 가졌습니다. 여전히 소녀감성이 충만한 아내는 제가 회사에 가서 일주일 마감을 하고 코리아타운을 비롯한 다른 신문 잡지들을 살펴보고 오는 동안 혼자서 여러 개의 풍선을 불어 천정에 붙여놓고 거실 여기저기에다가는 수십 송이의 장미와 황금빛 촛불잔치를 벌여놨습니다.

 

딸아이 부부와 아들녀석이 준비한 상당히 무리한선물에 특별 주문한 생일케익, 맛있는 와규, 거기에 좋은 술까지 더해지니 세상 부러울 게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화목한 여섯 식구에게서 느껴지는 사람 냄새, 거기에 에이든의 살인미소와 재잘거림이 더해져 함께 하는 시간 내내 행복한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다시 3일 후, 설날인 월요일 저녁에 함께 먹은 떡국도 그 아이들과 함께였기에 역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 됐습니다. 함께 웃고 떠들며 즐기는 순간순간들이 우리에게는 뭐라 표현할 수 없는 행복 그 자체였습니다.

 

에이든을 품에 안고 서서 문득 30년도 훨씬 전 어머니와 단둘이 쓸쓸하게 떡국을 먹던 시간들을 떠올렸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감사와 행복의 시간입니다. 워낙 심성이 맑고 착해서 무슨 무슨 날은 절대 빠트리는 일이 없고 같은 동네에 살면서 엄마 아빠를 살뜰히 챙겨주는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내와 저는 충분히 행복하고 감사한 삶을 살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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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 10 1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