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피곤함도 금세 잊어 버립니다 “김 기자!” 25년 전, 하늘 같은 편집국장에게서 처음 이런 부름을 받았을 때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숫제 저를 부르는 건 줄도 모르고 있다가 몇 차례나 더 호명이 된 후에야
편집국장 앞으로 나갔습니다. 견습기자, 잔뜩 기합이 들어간
긴장상태에서의 그날의 기억이 지금도 선합니다. “김 기자 글이 괜찮아서… 그냥
넘기는 거야.” 입사 후 한 달쯤 지났을까, 편집국장은 채
견습 딱지도 떨어지지 않은 저의 글을 ‘그냥 대충 훑고만’ 제작파트에
넘겼습니다. 두고두고 생각해도 정말 고맙고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이후에도 기자생활을 하는 동안 “좋은
기사 써줘서 고맙다”는 전화를 받은 경우도 많았고 “그 기사
안 빼면 당장 광고를 끊겠다”라든가 “법정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협박을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그냥 두지 않겠다” 또는 “밤길
조심해라” 등의 섬뜩한 위협을 받기도 했습니다. 25년 넘게 수없이 많은 글들을 써왔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보성 기사나 각박한 세상에서 가슴이 따뜻해지는 훈훈한 글을 쓸 때가 가장 좋았던 것 같습니다. “사장님이 식당 메뉴에 ‘대표선수’라는 표현을 쓰는 걸 보고는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식당 메뉴에
대표선수, 참 희한하지 않아요?” 얼마 전 <코리아 타운> 디자인실장이 회식 자리에서 툭 던진 이야기입니다. 식당 광고를 만들면서 그 식당이 가장 내세우고 싶은 메뉴를 가리켜 저는
‘대표선수’라는 표현을 씁니다. ‘3총사’ 또는 ‘4총사’라는 표현도 즐겨 씁니다. 같은 카피를 만들어도 뭔가 좀 달라 보이게
해야 한다는 욕심(?) 때문입니다. 얼마 전, 그날도 이런저런 바쁜
일로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다가 오후 4시 반이 넘어서야 겨우 점심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돼지국밥 한 그릇을 시켜서 막 숟가락을 드는데 모발폰 벨이 울렸습니다. 시드니에서 문화예술아카데미를 운영하시는 한 목사님의 전화였습니다. “김 사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딱히
생각은 안 났지만 제가 찾고 있던 단어가 바로 그거였는데 김 사장님이 아주 잘 짚어 주셨습니다.” 그 목사님은 제가 광고 카피에 쓴 ‘문화
엘리트’ 그리고 ‘문화사관학교’라는 표현이 아주 마음에 든다고 하셨습니다.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
밥 먹기 조차 힘든 상황이었지만 그 ‘기분 좋은 전화 한 통’에
저는 돼지국밥 한 그릇을 정말 맛 있게 비울 수 있었습니다. “코리아 타운이 광고를 잘 만든다”라든지
“코리아 타운은 읽을 거리가 많아서 좋다”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저는 늘 기쁨 반, 긴장 반의 감정을 느낍니다. 여기저기를 다니다가 벽에 붙어 있는 포스터를 보거나 다른 신문, 잡지를 넘기다가 <코리아 타운>의 흔적이 들어 있는 것들을 접할 때마다 “이거 우리가 만든
거네” 하며 웃음을 짓게 됩니다. 읽을 거리에 관한 한 아직 기쁨보다는 긴장이 더 많습니다. 기자들이 열심히 써온 기사와 외부원고들을 나름 열심히 편집해보지만 아직 근본적으로 넘어야 할 산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바쁘고 피곤하다가도 기사나 카피만 붙들면 비몽사몽이던 정신이
순간 멀쩡해지는 건 참 신기한 일입니다. 그리고 좋은 기사나 카피를 뽑아냈을 때의 환희… 그래서 저는 피곤함도 금세 잊어버리는 모양입니다. ********************************************************************** 김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