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2

제목그래서 피곤함도 금세 잊어 버립니다 #5192022-07-23 17:07

그래서 피곤함도 금세 잊어 버립니다

 

김 기자!” 25년 전, 하늘 같은 편집국장에게서 처음 이런 부름을 받았을 때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숫제 저를 부르는 건 줄도 모르고 있다가 몇 차례나 더 호명이 된 후에야 편집국장 앞으로 나갔습니다. 견습기자, 잔뜩 기합이 들어간 긴장상태에서의 그날의 기억이 지금도 선합니다.

 

김 기자 글이 괜찮아서그냥 넘기는 거야.” 입사 후 한 달쯤 지났을까, 편집국장은 채 견습 딱지도 떨어지지 않은 저의 글을 그냥 대충 훑고만제작파트에 넘겼습니다. 두고두고 생각해도 정말 고맙고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이후에도 기자생활을 하는 동안 좋은 기사 써줘서 고맙다는 전화를 받은 경우도 많았고 그 기사 안 빼면 당장 광고를 끊겠다라든가 법정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협박을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그냥 두지 않겠다또는 밤길 조심해라등의 섬뜩한 위협을 받기도 했습니다.

 

25년 넘게 수없이 많은 글들을 써왔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보성 기사나 각박한 세상에서 가슴이 따뜻해지는 훈훈한 글을 쓸 때가 가장 좋았던 것 같습니다.

 

사장님이 식당 메뉴에 대표선수라는 표현을 쓰는 걸 보고는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식당 메뉴에 대표선수, 참 희한하지 않아요?” 얼마 전 <코리아 타운> 디자인실장이 회식 자리에서 툭 던진 이야기입니다.

 

식당 광고를 만들면서 그 식당이 가장 내세우고 싶은 메뉴를 가리켜 저는 대표선수라는 표현을 씁니다. ‘3총사또는 ‘4총사라는 표현도 즐겨 씁니다. 같은 카피를 만들어도 뭔가 좀 달라 보이게 해야 한다는 욕심(?) 때문입니다.

 

얼마 전, 그날도 이런저런 바쁜 일로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다가 오후 4시 반이 넘어서야 겨우 점심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돼지국밥 한 그릇을 시켜서 막 숟가락을 드는데 모발폰 벨이 울렸습니다.

 

시드니에서 문화예술아카데미를 운영하시는 한 목사님의 전화였습니다. “김 사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딱히 생각은 안 났지만 제가 찾고 있던 단어가 바로 그거였는데 김 사장님이 아주 잘 짚어 주셨습니다.”

 

그 목사님은 제가 광고 카피에 쓴 문화 엘리트그리고 문화사관학교라는 표현이 아주 마음에 든다고 하셨습니다.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 밥 먹기 조차 힘든 상황이었지만 그 기분 좋은 전화 한 통에 저는 돼지국밥 한 그릇을 정말 맛 있게 비울 수 있었습니다.

 

코리아 타운이 광고를 잘 만든다라든지 코리아 타운은 읽을 거리가 많아서 좋다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저는 늘 기쁨 반, 긴장 반의 감정을 느낍니다.

 

여기저기를 다니다가 벽에 붙어 있는 포스터를 보거나 다른 신문, 잡지를 넘기다가 <코리아 타운>의 흔적이 들어 있는 것들을 접할 때마다 이거 우리가 만든 거네하며 웃음을 짓게 됩니다.

 

읽을 거리에 관한 한 아직 기쁨보다는 긴장이 더 많습니다. 기자들이 열심히 써온 기사와 외부원고들을 나름 열심히 편집해보지만 아직 근본적으로 넘어야 할 산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바쁘고 피곤하다가도 기사나 카피만 붙들면 비몽사몽이던 정신이 순간 멀쩡해지는 건 참 신기한 일입니다.

 

그리고 좋은 기사나 카피를 뽑아냈을 때의 환희그래서 저는 피곤함도 금세 잊어버리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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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 10 1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