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불편했지만 행복한 동거 도무지 엄두가 나질 않았습니다. 집
안팎으로는 아직 공사가 한창이었고 여기저기에 쌓아놓은 짐들이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이삿짐을 풀어놓던
이삿짐회사 직원 한 분이 “오늘 꼭 이사를 하셨어야 했어요?”라고
한 마디 툭 던졌습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전에
살던 집은 내놓자 마자 렌트가 나가 우리가 이사 온 다음 날 들어오게 돼 있었기에 문자 그대로 진퇴양난이었습니다.
한참 기계 소리가 시끄러운 집으로 밀고 들어올 수밖에 다른 대안이 없었습니다. 리노베이션은 예정됐던 3주의
공사기간을 꽉 채우고도 근 1주일 동안 더 계속 됐습니다. 이사
온 첫 날은 그야말로 집안에 꽉꽉 들어찬 크고 작은 박스들 때문에 발 디딜 틈조차 없었습니다. 하지만
정리가 안 된 어수선한 꼴은 절대 두고 보지 못 하는 성격의 우리 식구들은 첫 날부터 본격적인 집안정리 작전에(?)
들어갔습니다. 공사가 진행 중인 자리를 여기저기 피해가며 짐들을 정리했고, 이 같은 작업은 이른 새벽부터 밤 늦은 시간까지 계속됐습니다. 그
덕에 이사 온 다음 날, 그래도 우리 집은 ‘사람 사는 집의
형태’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지난 주 토요일, 이삿짐을
푼 첫 날은 짜증이 좀 났었습니다. 어찌 됐든 예정된 날짜가 지켜지지 않아 이것저것 마구 엉키고 어수선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식구는 그 짜증스러움을 웃음으로 대신했습니다. 사실 무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에게 짜증을
내서 얻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이심전심이라고 그 사람들도 바쁜 와중에서도 계획에 없던
일까지 이것저것 챙겨가며 열과 성을 다해 우리 집을 예쁘게 변화시켰습니다. 저는 이번 리노베이션을 겪으면서 전문가의 중요성, 전문가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일반인들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작업들이 분야별 전문가의 손을 거치면서 신기한 현실로 나타나곤 했습니다. “피곤하실 테데 이거 하나 마시고 하세요!”
우리는 가끔씩 시원한 박카스 한 병, 차가운 음료수 한 캔씩을 건넸고, 그들에게서 받은 캔 커피 하나에 피로를 잊을 수 있었습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마음 먹은 대로, 계획한
대로 일이 진행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일이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고, 예정보다 지연됐다고 인상을 찌푸리고 짜증을 낸다면 서로 힘들어지고 불편해질 것입니다. 그럴 때일수록 서로를 챙겨가며 이해 해줄 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조금 더
편안하고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지난 수요일 저녁, 우리는 얼추
정리가 된 뒷마당에서 리노베이션을 위해 애써준 사람들과 첫 바비큐를 가졌습니다. 삼겹살에 소시지, 이런저런 반찬 그리고 차가운 쏘주, 맥주… 피곤함을 잠시 잊고 우리는 이야기 꽃을 피웠습니다. 당초 일정보다 늦어진 공사기간을 놓고 우리가 짜증스런 반응을 보였다면, 일하는 사람들도 이런저런 우리의 부탁을 외면 또는 귀찮아했다면 그렇게 편안한 시간은 서로 없었을지 모릅니다. 저는 요 며칠 동안의 어수선했던 기간을 ‘조금은
불편했지만 행복한 동거 기간’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 가족은 그 조금은 불편했지만 행복한 동거를 마치고 이스트우드 새 집에서 또 다른 행복을 그려나가고 있습니다. ********************************************************************** 김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