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 감사합니다 그야말로 ‘착잡한’ 마음이었습니다. 바로 전날 세계를 경악시킨 911테러가 터져 온 세상이 혼돈상태에 빠져 있었지만 저는 시드니 행 비행기 탑승을 강행했습니다. 테러의 충격에 항공권 취소가 잇따라 인천국제공항까지 가는 고급 리무진버스에는 운전기사와 저 단둘만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맨땅에 헤딩하기’ 식 호주 이민생활…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 속에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혼란스러움이 들어있었습니다. 하지만
남은 정리를 마치고 50일 후에 합류하기로 한 우리 가족에게 이곳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어있었습니다. 언제나 ‘헛똑똑이’였던 저는 오롯이 우리의 노력으로 장만한 서른 두 평짜리
예쁜 아파트를 회사 살리기와 빚 보증으로 통째 날려버렸습니다. ‘남의 돈은 단돈 1원이라도 떼먹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하에 집 판돈으로 모든 빚을 갚고 나니 우리 손에는 1400만원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 말도 안 되는
돈으로 아내와 어머니, 그리고 두 아이와 함께 낯선 땅에서 삶을 꾸려나가기란…. 낮에는 신문 잡지사에서 일하며 새벽에는 세븐데이로 울워스 청소를 하는 생활이 시작됐고 함께 청소를 하는 아내에게는
말로는 다할 수 없을 만큼의 미안함이 쌓여갔습니다. 게다가 ‘관광비자로 시드니에 오면 취업비자며 영주권까지 다 해결해주겠다’던
말만 철썩 같이 믿었던 것도 헛똑똑이의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었습니다. ‘이민 초기에는 1년, 아니 한달 앞만 내다봐도 깜깜합니다. 일주일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아내면
분명 길이 생길 겁니다’라며 용기를 준 지인의 말대로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다 보니 어느새 16년이 됐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 세상에서
가장 예쁘게 가꿔놓은 우리 집을 남의 손에 넘겨주던 날… 아내의 눈에서는 눈물이 소리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고 저는 그 모습을 지금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두 번 다시 우리 집을 갖는다는 것, 그것도 남의 나라 호주에서 우리 집을 갖는다는 건 정말이지 불가능한 꿈이었습니다. 새벽 잠을 설치며
청소를 하고 쉴 틈 없이 회사에 출근하는 생활이 반복되는 가운데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는 부러움 그 자체로 다가왔습니다. 4000불에 산, 주행거리가 34만Km도 넘은 똥차는(?) 시도 때도 없이 꺽꺽거리며 우리의 속을 태웠습니다. 열심히 그리고 원칙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 시드니에 살면서 우리 가족이 늘 마음에 품고 있는 명제입니다. 호주는 조금이라도 게으름을 피우거나 반칙을 해서는 결코 잘 살 수 없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요즘도 하루하루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절대로 이뤄질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내 집 마련의 꿈이 현실이 돼서
우리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우리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 이름으로 된 회사 사무실도 하나 가지고 있어 더더욱 고마운 마음입니다. 지금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있고 그렇게 만들어내는 코리아타운을 가장 많은 분들이 가장 먼저 찾아주고 있어 또한 고맙습니다. 여전히 지 엄마 아빠보다도
할머니 할아버지를 더 좋아하는 에이든은 요즘 우리 행복의 절정입니다. 지난주에는 Father’s Day 가족외식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녀석을 지네 차에 태우려 했더니 “시어! 시어!” 하며 두
다리와 두 팔로 저를 꽉 껴안는 기쁨을 선사해줬습니다. 언젠가는 제 정신을(?) 차리겠지만 되도록 오래오래 지금처럼 그래 줬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지난해 대전 원신흥동성당에서 만난 이상욱 요셉 신부님이 우리에게 선물해주신 말씀액자를 바라보며 오늘도 아내와
저는 감사함을 생각합니다. ********************************************************************** 김태선 tonyau777@hot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