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운전사’를 기다리며… 그 무렵… 저도 서울역 근처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대학생들의 거대한 행렬은 하루도 빠짐없이 서울역 광장을 향하고
있었고 저는 낡은 건물 한 켠에서 그 모습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저의 아픔이(?) 배어 있는
대학의 깃발이 보일 때면 저도 모르게 주먹이 불끈 쥐어졌습니다. 6년동안의 긴 방황을 끝내고 ‘이제는 조금 다르게(?) 살아보자’며
다시 대학입시 준비를 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광주에서 전라도 폭도들이 폭동을 일으켰고 빨갱이와 김대중이 배후조정을 하고 있다.’ 10일 동안 목숨을
걸고 광주를 위해, 민주주의를 위해 사투를 벌였던 1980년 5월 광주사람들의 항쟁은 대중들에게 그렇게 전달됐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과 야합하거나 굴복한 한국의 언론들은 연일 광주 이야기를
그렇게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기레기’라는 존재는 이미 그때부터 아니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대학 캠퍼스를 짓밟는 전경들의 구둣발은 예전보다 훨씬 심해졌고 지금 생각해도
몸서리가 쳐지는 백골단의 가공할만한 전투력은(?) 정말이지 끔찍할 정도였습니다. 대학 신문사를 음으로 양으로 조여오는 그들을 떨궈내는데도 적잖은 힘이 필요했습니다. 우리는 광주항쟁 현장을 촬영한 비디오테이프와 당시 광주에 있었던 사람들을
통해 저들의 만행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5년
후 전남사회운동협의회가 광주항쟁 참가자와 목격자 200여명을 대상으로 당시 상황을 조사하고 소설가 황석영
선생이 책임 집필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가
출판됐습니다. 여전히 군부독재의 서슬이 퍼렇던 시절이었던 만큼 이 책은 비밀리에 인쇄를
마치고 제본작업을 하던 중 2만부를 모두 압수당하는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결국 이 책은 작은 인쇄소에서 밤새 마스터인쇄로 1000부씩을 찍고
손으로 제본을 해 대학가를 중심으로 파도처럼 퍼져나갔습니다. 저도 기자 초년병 시절, 친하게
지내던 성균관대 앞 서점 주인의 배려로 이 책을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는 책장이 너덜너덜해지도록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쳤습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이었던 2007년에
광주항쟁을 그린 영화 ‘화려한 휴가’가 제작됐고 우리도 시드니에서
그 영화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가 상영되는 두 시간 남짓 동안 여기저기에서 눈물 훔치는 소리만
간간이 들릴 뿐 숨소리 하나 크게 나오지 않았던 그때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선합니다. ‘화려한 휴가’가 제작된 지 정확히
10년이 지난 지금, 또 한편의 광주 이야기를 담은 영화가
나왔습니다. 한국에서는 일찌감치 1000만 관객을 돌파한
‘택시운전사’가 어제부터 시드니에서도 상영되고 있습니다. 저도 이번 주 일요일 ‘택시운전사’를 만납니다. 1980년 광주의 5월… 그날의 아픈 역사가 한국은 물론,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입니다. 10년 전 ‘화려한 휴가’를
접한 한 네티즌이 남긴 이야기가 새삼 새롭게 다가옵니다. ‘역사는 외우는 게 아니라 배워야 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이순신 장군도 자신이 승리한 전투의 횟수가 몇 번이고 대첩들의 순서와 위치, 격파한 일본의 함선이 몇 척인지를 달달 외우며 암기하기를 바라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자신을 신처럼 떠받들기를 원하지도 않을 겁니다. 다만 자신과
조선의 민초들이 겪은 고통과 맞서 싸운 용기들을 가슴 속에 담고 있기를 바랄 것입니다. 이처럼 5.18의 열사와 희생자들도 자신들이 영웅으로 기억되기를 바라진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그들의 용기와 마지막까지 잃지 않았던 희망들을 잊지
말고 기억해주기를 바랄 것입니다… 역사는 외우는 게 아니라 배워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김태선 tonyau777@hot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