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에서 산다는 건… 한동안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길을
지나다가 정원을 가꾸고 꽃에 물을 주는 가족들을 보면 우리도 모르게 걸음을 멈춘 채 부러운 시선을 보내곤 했습니다. 정원을 다듬는 엄마 아빠 곁에서 뛰노는 아이들과 강아지의 모습까지도 우리에게는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로서는 호주에 온지도 얼마 되지 않은 데다가 비자상태도 안정적이지 못했고
낮에는 신문 잡지사에서 일하며 새벽이면 아내와 함께 Woolworths 청소를 세븐 데이로 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한국에서 ‘남 좋은 일’ 열심히 하다가 서른 두 평짜리 꽤 괜찮은 아파트를 날려먹고 거의 빈손으로 호주에 와서는 낡은 집에서 어머니까지
다섯 식구가 렌트로 살고 있었으니 박탈감과 부러움이 참 컸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맨땅에 헤딩을 계속하던 우리는 호주에 온지 3년 11개월 만에 영주권을 받았고 곧바로 내 집 마련 작전에 돌입했습니다. 우리는 교민밀집지역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 950스퀘어미터에 수영장이
딸려있는 하우스를 우리 집으로 만들었고 그렇게 부러워하던 강아지와 고양이도 새 식구로 들였습니다. 한국보다는 은행 돈이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큰 호주이지만 평생 다시는 못
가질 것 같았던 내 집을 마련했다는 기쁨에 우리는 힘든 줄 모르고 집 안팎에 정성을 들였습니다. 속사정을
모르는 한국의 지인들은 “그 집이 호주로 이민 가더니 엄청 크게 성공했더라. 수영장까지 있는 280평이 넘는 저택에서 살고 있더라”며 놀라워했습니다. 그 집에서 3년 반 정도를 산
우리는 2009년 11월 지금의 이스트우드 집으로 옮겨왔습니다. 전에 살던 집보다는 300스퀘어미터 정도가 작지만 우리에게는 더
없이 좋은 최고의 보금자리입니다. 우리 집은 아내나 저나 성격이 비슷해 조금이라도 지저분한 건 두고 보지
못합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저보다는 아내가 조금 더 심해 아내는 시간만 나면 집안 일에 매달려 있습니다. 뒷마당 잔디밭 일부를 텃밭으로 만들어 각종 야채들을 키우고 있고 화단에도
다양한 과일나무와 꽃들이 가득합니다. 매일 아침 제가 출근을 하면 아내는 뒷마당으로 나가 구석구석 정성을
기울입니다. 요즘은 상추, 와사비상추, 갓, 부추, 미나리, 파 그리고 복초이까지… 다양한 야채들이 텃밭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아내는 씨를 뿌려 복초이 정글을(?) 만들어놨고 깻잎들도
그 크기를 점점 더해가고 있습니다. 이맘때쯤 되면 뒷마당에 있는 자카란다도 우리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기쁨으로
다가옵니다. 위쪽부터 이미 보랏빛 향연을 시작한 녀석은 이제 곧 우리 집 뒷마당을 온통 보라색 눈꽃으로
뒤덮을 겁니다. 지난 주 토요일에는 이리저리 복잡하게 뻗어있는 자카란다 나뭇가지 다듬는
작업을 했습니다. 전문조경관리사가 해야 할 엄청난 대 작업을 아내와 저는 겁도 없이 딸아이 신랑과 함께
셋이서 해냈습니다. 한 시간 정도면 될 거라는 생각에 기꺼이 작전에(?) 참가한 딸아이 신랑은 다섯 시간을 훌쩍 넘는 긴 작업에도 싫은 내색 한번 안 했습니다. 그 말도 안 되는 대 작업을 마치고 함께 했던 돼지갈비에 소주 몇 잔은 또 뭐라 표현할 수 없는 행복으로 기억됩니다. 결벽증이 느껴질 정도로 늘 집 안팎을 가꾸고 정리하는 버릇을 가진 아내와
저는 지난해 직접 잔디를 새로 깔았던 억척에 이어 올해에도 이렇게 또 한 건을 크게 해냈습니다. 굳이 안 해도 될 일까지 사서 고생하듯 하고 있지만 아내와 저는 ‘그 정도는 해야 하우스에서 살 자격이 있다’고 스스로를 위안합니다. 하우스에서 그것도 내 집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는 늘 고마움과 행복입니다. ********************************************************************** 김태선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