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할머니 말고 삼촌, 이모 “보호자분들, 일루 오세요!” 터프한(?) 간호사가 갓 태어난 아기를 자신의 왼쪽 겨드랑이에
낀 채 우리를 향해 손짓을 했습니다. 그녀의 오른손에는 진료차트 같은 게 들려 있었습니다. 헐… 아무리 전문가라 하더라도
아기를 저렇게 다루다니…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걸 따져 물을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저 아기가 건강하게 잘 태어났고 아기엄마가 무사하다는 사실이 고마울 뿐이었습니다. 1986년 7월의 무더운 한 여름날
오후였습니다. 그날따라 미룰 수 없는 중요한 인터뷰가 잡혀 있어 부랴부랴 취재를 마치고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동안에 우리의 둘째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터프한 간호사를 따라 들어간 방에는 아내가 혼자 누워 있었고 아내는 많이
힘들었을 텐데도 언제나처럼 조용한 미소를 띠며 저를 바라봤습니다. 저도 아무 말 없이 다가가 아내를
한번 꼬옥 안아줬습니다. 유도분만 촉진주사를 맞은 덕인지 이번에는 세 시간 남짓 만에 아기를 낳았다고
했습니다. 첫 아기를 낳을 때는 열 세시간 넘게 진통을 계속 해 많이 안쓰러웠는데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아내 곁에는 몸무게 2.2킬로그램에
불과한 작은 아기가 똘망똘망한 눈망울로 함께 했습니다. 체중이 한참 미달됐음에도 녀석은 아주 건강하고
씩씩한 모습이었습니다. 지난 화요일 밤 12시가 조금
넘은 시각, 29년 전 그렇게 태어났던 딸아이가 자신의 아기를 낳고 ‘엄마’가 됐습니다. 일요일 오후 함께 점심을 먹고 “나, 아기 낳으러 간다”며 씩씩하게(?)
병원으로 들어갔던 녀석이 일요일을 지나 월요일까지 넘기자 살짝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는데 마침내 서른 시간 만에 출산을 한 겁니다. 무엇보다도 엄마가 무사하고 아기가 건강하다니 다행이었습니다. 딸아이도 제 엄마를 닮아 유도분만 촉진주사를 맞고 오랜 진통을 한 끝에 몸무게 2.1킬로그램짜리 사내아기를 낳았습니다. 그런 건 안 닮아도 될 텐데
엄마와 딸이라 어쩔 수 없었나 봅니다. “세상은 참 돌고 도는 거 같아….” 딸아이
출산소식을 들은 아내의 첫 마디였습니다. 그 시절, 아내가
어린 나이에 두 아이를 낳았을 때 어른들의 마음도 지금의 우리 같았을 겁니다. 그리고 딸아이도 ‘자식을 낳아봐야 부모 마음을 알게 된다’는 말을 조금은 실감했을 듯싶습니다. 회복실에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눈이 간 건 딸아이의 얼굴이었습니다. 그리고 첫 마디도 “너는 괜찮니?”였습니다. 그리고는 “니가 우리 딸 고생시킨 놈이냐?” 하며 아기 엉덩이를 한 차례 때려(?)줬습니다. 역시 너무 작게 태어나 제 엄마처럼 병원에서 ‘연구대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녀석은 똘똘한 데다가 키도 제법
크고 손가락 발가락도 길쭉길쭉해 나중에 ‘훈남’이 될 수
있는 자질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딸아이가 결혼한지 올해로 만 4년이
됐음에도 우리는 아직도 딸아이 신랑을 향해 ‘사위’니 ‘박서방’이니 하는 표현을 안 쓰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종석이’라고
부르는 게 편하고 자연스럽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하나 같이 “할아버지
할머니 되신 것 축하한다”고들 하지만 우리는 정말이지 징그럽고(?) 실감이
안 납니다. 아직 젊어서인지, 아니면 철이
덜든 탓인지… 아내와 저는 아직 그 같은 호칭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돼 있습니다. “나중에라도 저 녀석이 할아버지 할머니라 부르면 대답 안 한다. 삼촌, 이모라 부르게 해라.” 아기가 헷갈려 하긴 하겠지만 우린 한동안
그 호칭을 고집할 것 같습니다. 진짜(?) 할아버지 할머니가
될 때까지는…. ********************************************************************** 김태선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