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 더 바쁜 부부?! “앞마당은 아직 안 깎아도 될 것 같아. 오늘은
뒷마당만 하자.” 고마운 얘기였습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이야기는
이랬습니다. “그런데 우리, 잔디 깎기 전에 저거 조금만
치자.”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뒷마당에
있는 목련과 자카란다 가지들 중 지나치게 삐져나와 있거나 햇볕을 심하게 가리는 것들을 열심히 쳐내고 잘라냈습니다.
옆집에서 넘어와 우리 집 마당을 어지럽히고 있는 담쟁이 덩굴들도 다듬어냈습니다. 얼마 전 ALDI에서 산, 3미터도 넘는 나뭇가지 잘라내는 기구가 큰 몫을 했습니다. 그걸로도
해결이 되지 않는 두꺼운 가지들은 끝 부분에 톱을 끼워 슬근슬근 잘라냈습니다. 어느새 뒷마당에는 그렇게
잘라낸 가지와 나뭇잎들이 수북이 쌓였습니다. 그 와중에 아내는 둘이 들어도 버거운 커다란 나뭇가지를 혼자 어찌 해보려다가
엉덩방아를 찧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바보처럼, 제가 힘들까
봐 그랬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금요일
이른 아침, 아무 것도 먹지 않은 채 우리는 그렇게 중노동에(?) 시달렸습니다. 시간은 어느새 낮 열두 시를 향해 달리고 있습니다. “자기야, 힘들지? 우리, 이거 한 병씩 마시자.” 아내가
시원한 박카스 한 병을 내밉니다. 잠시 숨을 고르고는 그 약발에 힘입어 뒷마당 잔디를 단숨에 깎아냈습니다. 아주 높은 곳을 제외하고는 나름 깔끔하게 정돈된 나무들과 푸른빛을 더하는
잔디를 바라보며 들이켜는 얼음물 한 컵은 가슴 속 깊은 곳까지 시원하게 만들어줍니다. 아내와 저는 성격이 좀 별나서 잔디가 조금만 길어 보여도 참지를 못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다른 집들보다 잔디를 자주 깎는 편인데 <코리아타운>이 목요일까지만 일하는 덕에 우리의 금요일은 주로 그렇게 시작됩니다. 그래서
우리 부부에게는 주말이 더 바쁘고 힘들지만 그렇게 땀을 흠뻑 흘리고 나면 몸도 마음도 한껏 상쾌해집니다. “우리, 수고했으니까 삼겹살 구워
먹을까?” 어느새 뒷마당 데크에는 삼겹살 냄새가 진동을 합니다. 그리고
부딪치는 소주 한 잔…. 금요일 한낮 노가다(?) 후에 느끼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분 좋은 행복입니다. 나뭇가지들이 잘려 떨어지고 잔디 깎는 기계가 돌아다니는 동안 집안에 갇혀
있던 우리 집 고양이 ‘해삼이’도 기분 좋게 뒷마당을 한
바퀴 돌고 와서는 아내의 다리에 머리를 비벼대며 애교를 부립니다. 문득 옛날 생각이 납니다. 시드니에
처음 왔을 때, 아이들이 강아지와 함께 뛰어 놀고 그 사이에서 꽃이며 나무에 물을 주는 부부들을 보며
아내는 참 많이 부러워했습니다. 한국에서 회사 살리기와 빚 보증으로 서른두 평짜리 아파트를 날려버린 저에게
아내는 단 한 차례의 원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집 판 돈으로 동네 수퍼에 줄 돈 몇 천원까지 모두 갚고
집에 돌아왔을 때 소리 없이 흘린 눈물이 전부였습니다. 제가 시드니에 와서 좋은 남편, 자상한
남편으로 오해 받는 이면에는 이 같은 ‘흑역사’가 들어 있습니다. 저는 지금 한국에서 아내에게 진 여러 가지 빚들을 조금씩 조금씩 갚아나가고
있는 겁니다. 앞으로도 금요일 아침에 나무를 자르게 하고 잔디를 깎게 해도, 중간에 박카스를 안 줘도, 일이 끝난 후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을
챙겨주지 않아도 열심히 열심히 아내에게 진 빚을 갚아나갈 겁니다. 지난 주 금요일처럼. ********************************************************************** 김태선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