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2

제목기사검열을 피하려면… #6952022-07-23 19:04

기사검열을 피하려면

 

편집국장 책상 위에 조심스레 기사를 올려 놓습니다. 2백자 원고지 1 20매 분량의 벤처기업 특집기사. 수많은 벤처기업들을 찾아 다니며 만들어낸 꼭지였기에 기사를 마치고 나자 진이 쭉 빠지는 느낌마저 듭니다.

 

그래도 벤처기업 몇 군데는 더 가보고 관련단체 전문가인터뷰도 넣고 싶었는데아쉬움이 진하게 남습니다. 하지만 데드라인을 지키기 위해서는 더 이상의 욕심은 버려야 했습니다.

 

이제 남은 건 편집국장의 심판(?)입니다. 평소에는 마음 좋은 동네형님 같지만 일에 관한 한 언제나 경이로운 존재로 다가오는 편집국장이 어떤 판단을 내릴 지가 관건입니다. 혹시라도 기획의도에 못 미쳐 빠꾸를 맞기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입니다.

 

당시의 저는 경력 4년차의 겁 없는(?) 기자였지만 제가 내놓은 기사가 편집국장의 손을 거쳐 활자화될 때까지는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제가 쓴 기사를 미리 검사하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 사람, 편집국장뿐이었습니다.

 

가끔은 외부로부터 기사가 나가기 전 미리 보여달라는 요구를 받기도 했습니다. 특히 재벌그룹 총수나 높은 사람들 이야기가 실릴 경우에는 예외 없이 해당그룹 비서실이나 해당부처 공보실에서 이 같은 요구를 해오곤 했습니다.

 

이럴 때마다 저의 대답은 한결 같았습니다. ‘제가 쓴 기사가 활자화 되기 전 미리 보여지는 건 마치 한 달 동안 목욕을 하지 않은 제 알몸을 보여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저를 믿고 취재에 응하셨으니 기사가 나오면 보시지요.’

 

실제로 저는 제가 맡은 기사에 관한 한 늘 하나부터 열까지 만전을 기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기사를 미리 보고 싶어하던 사람들도 활자화 된 기사를 보고 나서는 역시 김 기자님이다.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습니다.

 

 

제가 기자시절 특히 애정을 갖고 다루던 분야는 소리 없이 남을 돕는 사람들의 가슴 따뜻한 이야기, 어려운 역경을 딛고 성공을 일궈낸 사람들의 성공스토리, 한 분야에서 수십 년 동안 자기 길을 걸어온 전문가 이야기 등이었습니다.

 

물론, 세상을 시끄럽게 흔들어놓은 커다란 이슈들이나 비양심적인 기업들의 행태를 고발하는 기사들도 제 몫이긴 했지만 이런 이야기들보다는 가슴 뭉클한 이야기들을 다룰 때가 훨씬 더 편안하고 좋았습니다.

 

5공시절의 언론통폐합과 대규모 기자해직사태, 살벌한 언론사전검열, 그리고 가장 최근 MB정부의 방송장악까지본인들의 구린 이야기가 알려지는 게 싫어서 혹은 두려워서 그러는 거겠지만 애초에 원칙과 상식에 맞게 살면 될 것을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있을 때는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았던 제가 시드니에 와서는 가끔 기사검열(?)을 당합니다. “이 부분은 좀 쎈 거 아니야? 이건 좀 바꾸거나 뺐으면 좋겠는데?” 제가 쓰는 짧은 글, 긴 여운을 편집과정에서 미리 보게 되는 딸아이의 지적입니다.

 

제가 쓰는 글의 대부분이 기분 좋은 글이긴 하지만 아주 드물게 살짝 날이 서는경우가 있습니다. 2주 전 광고료 5 65불 때문에 잠적했다가 돼지국밥집에서 마주친 사람 이야기도 두 달 전쯤 처음 썼을 때는 비슷한 사례들을 묶어 조금 쎄게썼습니다. 그랬다가 딸아이의 검열에 걸려 다시 써서 2주 전에 넣은 겁니다.

 

제가 매주 이 글을 쓰는 건 시시콜콜 살아가는 이야기 속에서 작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떡일 수 있는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제, 다시 그런 가슴 따뜻하고 편안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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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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