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들이 아니었더라면… “아, 그러니까, 우리 어머니 무사하신지 얼굴이라도 좀 보게 해달라고! 이 새끼들… 돈이 필요하면 그냥 좋은 말로 세금을 내라고 하면 되지 왜 사람을 잡아넣느냔 말이야! 이거, 다 국보윈지 뭔지 그 새끼들, 전두환이가 시켜서 하는 짓이잖아! 이 개 같은 새끼들…” 입에 거품을 물고 악을 쓰는 순간, 누군가가
뒤에서 제 어깨를 확 잡아챘습니다. 제 앞에서 정문을 가로막고 서있던 전경들은 저의 이런 돌출행동에
어쩔 줄을 몰라 하며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이 친구야,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그렇게 함부로 나서는 거야? 조금 전처럼 그렇게 겁 없이 날뛰었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간다는 거
몰라? 게다가… 자네는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잖아. 노모 혼자 모시고 살면서 조심해야지….” 1980년 여름의 일이었습니다. 5년여의
방황 끝에 다시 대학에 들어가야겠다며 학원 공부를 마치고 돌아왔는데 가게 문이 열려 있었음에도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동네 사람들 얘기에 따르면 아침 일찍 수상한(?) 사람들이 대거
들이닥쳐 동네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모조리 끌고 갔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테이블 세 개를 놓고 간이식당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부가가치세라는
것도 없었고 어지간한 동네 가게들은 모두 무허가 상태로 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것을 전두환의
신군부가 이른바 정의사회구현을 위해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국보위)라는
걸 만들고 전국적으로 세금사냥을 시작했던 겁니다. 어머니가 끌려갔다는 서울 서부경찰서로 달려갔더니 소식을 듣고 달려온 가족들
수십 명이 경찰과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조사가 끝날 때까지는 면회가 안 된다’는 대답이 계속되는 가운데 스물 네 살짜리 찌질한 친구가 서슬이 퍼런 국보위며 전두환 욕을 쏟아내며 앞으로 나섰던
겁니다. 광주의 5월을 피로 진압하고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여 삼청교육대에 처넣는 무시무시한 그들이었습니다. 그날, 자신의 사무실로 저를
끌고 들어갔던 이름 모를 40대 초반의 경찰관이 아니었더라면 저는 분명 무사하지 못했을 겁니다. “이 친구야, 우리라고 뭐 이러고 싶어서 잠자코 있는 줄 알아? 웅크려야 할 때가 있고 나서야 할 때가 있는 거야. 자네가 또 잘못
되면 연로하신 자네 어머니는 어쩔 건데?” 어쩌면 제 생명의 은인일 수도 있었던 고마운 그 분 생각을
요즘도 문득문득 해봅니다. 가끔 기억을 떠올리게 되는 고마운 사람이 한 분 더 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에 막 올라갔을 때였습니다. 아이디어는 좋지만 자본이 없어 번번이 동업자에게 배신을 당하던 물러터진(?)
아버지로 인해 우리 집은 그야말로 찢어지게 가난해야 했습니다. 결국 서울 북아현동에서 경기도
능곡으로 쫓겨가서(?) 어머니와 둘이 살아야 했고 어머니는 생선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시골동네 구석구석을
돌며 장사를 했습니다. 학교에 가려면 용산역까지 기차로 가서 그곳에서 또 버스를 타야 했는데 기차표를
살 돈이 없어 기차를 몰래 훔쳐(?)타고 다녀야 했음은 물론, 그곳에서부터
학교까지는 40여분 거리를 걸어서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용산역 화물 출입구를 통해 밖으로 나가던 저는 한 젊은 역무원의 손에 덜미를 잡혔습니다. 처음에는 무섭게 화를 내던 그 역무원은 제 사정을 듣고 나서는 말 없이
제 두 손을 꼭 잡았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저를 자신의
사무실로 부른 그는 한달 동안 사용할 수 있는 기차표를 제 손에 쥐어줬습니다. “이 형도 너와 비슷한
시절이 있었어. 당장은 여러 가지로 힘들고 괴롭겠지만 우리에게는 꿈과 미래가 있으니 결코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것 잊지 말아라”는 말과 함께…. 30대 초반의
나이였던 장삼남 형…. 벌써 45년 전의 일이니 그 분도
이제는 백발의 노신사가 돼 있겠습니다. 문득문득 고마운 사람들 생각이 많이 나는 요즘입니다. ********************************************************************** 김태선 tonyau777@hot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