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년 전에는… 그때는 그랬습니다. 당시만 해도
캠시, 스트라스필드, 이스트우드 등 한인밀집지역에서는 예외
없이 비디오 숍들이 성업 중이었습니다. 10불을 내면 한국 TV 드라마, 예능, 영화 등이 담긴 비디오 테잎을 여섯 갠가 빌려주는 시스템이었습니다. 그걸 3박 4일인가 동안 빌려다 보고 반납하는 식으로 우리는 이곳에서도 한국의 TV 프로그램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처음 시드니에 온 2001년만
해도 주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던 흔한 모습이었습니다. 때문에 인기 있는 한국 드라마 여러 편을 한꺼번에 몰아서 보는 재미가 있었고
좀 미안한 얘기이지만 가까운 지인과 빌려온 비디오 테잎을 서로서로 돌려보는 방식도 공공연하게 행해지곤 했습니다. 처음 시드니에 왔을 때 ‘삐~’하는 연결음도 선명한 전화모뎀을 통해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한국에서는 이미 ADSL이 날아다니던(?) 시절에 이곳에서는 한국의 천리안이나 하이텔 같은 구닥다리를(?) 사용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고 보면 요즘은 그야말로 ‘미꾸라지가
용 된’ 셈입니다. 어찌 됐거나 지금은 한국 TV의 뉴스, 드라마, 예능
등 모든 프로그램들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으니 말입니다. 웬만한 한국 영화도 ‘조금만’ 기다리면 거실에서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상황이 됐습니다. 그럼에도 영화는 역시 영화관에 가서 대형 스크린을 통해서 봐야 제 맛입니다. 시드니에 살면서 우리는 그 놈의 영어 때문에 영화관을 자주 가지 못하는
서러움을(?) 겪고 삽니다. 그렇기에 가끔씩 들어오는 한국
영화는 우리에게는 그야말로 ‘가뭄에 단비’입니다. 아내와 저는 좋은 한국 영화가 들어오면 빼놓지 않고 영화관을 찾습니다. 다행이
우리 동네에서 가까운 톱 라이드 쇼핑센터에 이벤트시네마가 생겨 편리함을 더해줍니다. 몇 년 전만 해도 교민업체들이 한국 영화를 들여오더니 요즘은 중국회사 혹은
미국회사들이 한국 영화를 수입, 상영하고 있습니다. 홍보가
잘 안돼서인지 가끔은 텅 비다시피 한 영화관에서 거의 전세를 낸듯한 기분으로 영화를 보기도 하지만 최근에 본 두 편의 영화는 그런대로 많은 관객들이
함께 했습니다. 2주 전 금요일에는 올해 첫 1000만
영화에 등극하고 1400만 관객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신과
함께-죄와 벌’을 봤고 지난주 금요일에는 680만 관객을 눈 앞에 두고 있는 ‘1987’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신과 함께…’는 1편과
2편이 동시에 제작완료 돼 하반기에 2편이 개봉된다니 그때도
빼놓지 말아야겠습니다. ‘신과 함께…’는 2017년과 2018년이 교차되는 시점에 시의적절한 주제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고 ‘아주 작은 일이라도 잘못을 저지르지 말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새삼 갖게 해준 영화였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두 영화 중 ‘1987’에
더 많이 몰입해 있었습니다. 그 유명한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지더라”는
명언을(?) 남긴 서울대생 박종철씨 고문치사 사건으로 시작된 영화는 연세대생 이한열씨가 시위 도중 최루탄에
맞아 숨지는 사건으로 그 아픔의 절정에 이릅니다. 영화가 종반으로 치달을수록 영화관 안에서는 숨소리조차 크게 나지 않았고
여기저기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깜깜한 영화관… 스크린에
붙박이처럼 고정돼 있는 저의 눈도 많이 무거워져 있었고 가슴이 찢어질 듯한 먹먹함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힘겹게 되찾은 민주주의가 거머리
같은 적폐세력들에 의해 뒷걸음질쳐졌던 작금의 현실들, 그리고 시대의 부름이 거셌던 1987년… 이런저런 이유들을 핑계로 그 대열에 앞장서지 못하고 그저
‘동조’의 차원에 그쳤던 저 스스로가 새삼 부끄러워지던 시간이었습니다. ********************************************************************** 김태선 tonyau777@hot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