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2

제목생각이 닮는다? #8422022-07-23 22:05

생각이 닮는다?!

 

부부는 살아가면서 닮는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아내와 저는 3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 해왔음에도 서로 닮은 구석을 별로 찾아볼 수 없습니다.

 

허리사이즈 22인치의 가냘픈 몸매에 커다란 눈, 어깨를 덮는 긴 머리, 그리고 언제나 밝게 웃는 얼굴데이트시절 아내의 모습은 저에게 대충 이렇게 기억됩니다.

 

반면, 덥수룩한 머리에 180cm가 넘는 큰 키, 눈에 띄게 삐쩍 마른 체구대학시절 저를 아껴주시던 우리 과 미국인 교수님은 저에게 ‘Bony Shoulders’라는 별명을 지어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여자친구가 생기면 절대 어깨에 기대지 못하게 해라. 여자친구가 뇌진탕에 걸릴 수도 있다며 웃곤 하셨습니다. 이렇게 아내와 저는 처음부터 참 많이 다른 외모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아내와 저는 정말 멋모르는 상태에서 얼떨결에결혼이라는 걸 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도 결혼 전 이 여자, 결혼상대로 꽤 괜찮다싶었던 대목이 있었습니다.

 

가난한 늦깎이 대학생우리의 주머니는 늘 가벼웠고 바보 같은 그녀는 300원짜리 라면 한 그릇에도 행복해 했습니다. “오늘은 우리 특별한 날이니까 50원 더 내고 떡라면 먹을까?” 하면 깔깔대며 즐거워하던 그녀였습니다.

 

어쩌다가 분위기라도 내고 싶어 경양식 집, 지금으로 치면 괜찮은 레스토랑 같은 델 가면 저보다는 형편이 조금 나은 그녀가 지갑을 열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데이트 기간 동안 단 한번도 자신이 직접 돈을 낸 적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가슴에 안고 다니던 책 속에 10000원짜리 혹은 5000원짜리 한 장을 미리 넣어뒀다가 식사 중에 그 책을 자연스럽게 저에게 건네줬습니다. 늙수그레한(?) 남자친구를 카운터 옆에 세워두고 자기가 돈을 내는 건 남자친구의 자존심 혹은 기를 죽이는 행동이라 생각했던 겁니다. 20대 초반의 어린 친구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아내는 매사에 긍정적이었습니다. 반면 젊은 시절의 저는 비판적이다 못해 투쟁적이고 부정적인 성격으로 조금은 삐뚤어져(?) 있었습니다. 그렇던 제 성격은 아내를 만나면서, 아내와 함께 살면서 상당히 많이 아내의 그것을 닮게 됐습니다.

 

요즘도 아내와 저는 가끔 밤늦은 시간에 갑작스런 술판을 벌입니다. TV를 보고 있다가도 서로 눈이 마주치면 우리는 이미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겁니다. 본격적인 먹방이나 쿡방은 물론,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가도 우리의 생각은 어느 순간 일치합니다. “밤늦게 이러면 살찌는데…”를 연발하면서도 우리는 정말 맛있게 술과 음식들을 해치웁니다.

 

평소에도 아내와 저는 깜짝깜짝 놀랄 정도로 많은 생각의 일치를 갖고 있습니다. 얼마 전 뉴카슬에서 갈치를 신나게 잡아 올리던 날,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과 함께 처음 갈치낚시를 온 젊은 부부가 고전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저 가족한테 갈치를 한두 마리 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아내가 다가와 자기야, 우리 저 사람들한테 갈치 한 마리 주자라고 했습니다.

 

오랜 세월을 함께 하면서 사고방식과 가치관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많이 닮아 있었던 때문일 터입니다. 집안정리가 제대로 안돼있으면 못 견디는 것도, 남한테 미루기보다는 내가 나서서 먼저 하는 게 낫다는 생각도,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신세지는 걸 싫어하는 성격도 우리는 어느새 똑 닮아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외모가 비슷해지는 부부들도 많지만 우리 부부는 외모보다는 내면의 모습, 생각이 많이 닮아 있습니다. 앞으로도 아내와 저는 서로의 좋은 부분들을 더 많이 더 크게 닮아갈 것입니다.

 

**********************************************************************

 

김태선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 10 1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