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2

제목손금 도둑놈 #7982022-07-23 21:34

손금 도둑놈

 

솔직히안 예쁠 수가 없지요. 길을 지나다가 생판 모르는 남의 아기를 봐도 예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우리인데 우리 딸아이가 낳은 우리 아기를 어찌 예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처음 태어났을 땐 사람 같지 않았던(?) 녀석이 이제 두 달을 채워가면서는 제법 살도 올랐고 하루하루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키도 제법 크고 엄마 아빠의 좋은 점들만 골라 닮아서 훈남의 자질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녀석이 태어난 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녀석과 마주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딸아이 집으로 가든지 그 아이들이 우리 집으로 오든지 해서.

 

신기한 것은 녀석이 제 아내를 엄청, 어쩌면 제 엄마보다도 더 좋아한다는 사실입니다. 아내가 녀석을 안고 어르면 계속 웃는데 입을 보름달만큼이나 크게 벌리며 활짝 웃기도 하고 어떨 때는 소리까지 내며 웃는 겁니다.

 

쟤는 참 이상한 애야. 우리가 아무리 웃기려 해도 안 웃는데 엄마만 보면 저렇게 웃는단 말이야. 헤픈 놈엄마, 걔 아예 집에 데리고 가라.” 이 같은 딸아이의 말에 딸아이 신랑도 거들고 나섭니다.

 

하지만 그들의 말 속에는 은근한 속셈도(?) 들어 있습니다. 녀석을 우리한테 떠넘기고 지들끼리 돌아다니고 싶은 겁니다. 실제로 우리는 녀석이 태어난 지 2주쯤 됐을 때 얼떨결에 두 번 볼모가(?) 된 적이 있습니다.

 

딸아이 집 근처에 갔다가 떡볶이, 순대, 튀김, 오뎅, 김밥 이런걸 좀 사 들고 들렀더니 엄마, 우리 약국 좀 잠깐 갔다 오면 안 될까? 아기 체온계랑 약 좀 사와야 해서…” 하는 거였습니다.

 

하지만 30분 정도면 된다던 처음 얘기와는 달리 딸아이 부부는 세 시간이 넘도록 우리를 자기네 집에 묶어뒀습니다. 조금은 멋쩍은 웃음과 함께 간식거리를 사 들고 돌아온 그들은 다시 며칠 후 이번에는 아기를 안고 우리 집으로 왔습니다. 이들 부부사기단은 쇼핑할 게 있다며 아기를 우리 집에 놓고 나갔다가 또 네 시간 정도 둘만의 시간을 즐기고 돌아왔습니다.

 

이후에도 그들은 틈만 나면 아기를 우리한테 맡기고 돌아다니려 작전을 폈지만 우리는 부득이한 상황 외에는 절대 안 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정말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아기를 봐주겠지만 아기 때문에 우리의 생활을 뺏길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입니다. 주변사람들은 이런 우리를 별나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기 때문에 외출도 못하고 심지어 아기 봐주다가 병까지 났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 있는 사실은 녀석이 저를 쏙 빼 닮은 곳이 한 군데 있다는 겁니다. 제 손금은 손바닥을 좌우로 가로지르는 지능선과 감정선이 일자모양으로 하나로 연결된 이른바 막 쥔 손금입니다.

 

어릴 때부터 저는 넌 나중에 크게 될 인물이다. 누가 손금 보자고 해도 절대 보여주면 안 된다. 알았지?’ 하는 얘기를 참 많이 들었습니다.

 

막 쥔 손금‘100가지를 손에 쥘 수 있다해서 백악이라고도 불리는데 실제로 이런 손금을 가진 사람들 중에는 크게 된 인물들이 많다고 합니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 그리고 천하장사 이만기와 JYJ 박유천 등이 막 쥔 손금을 갖고 있답니다.

 

그런데 이 녀석이 저처럼 양쪽 손 모두 막 쥔 손금을 갖고 태어난 겁니다. 저는 녀석을 손금 도둑놈이라 명명했고 녀석을 부를 때도 도둑놈!’ 이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이제 녀석이 좀 더 커서 하이파이브를 알 때쯤 되면 우리는 만날 때마다 하이파이브를 할 겁니다. ‘도둑놈! 삼촌이랑 하이파이브 하자!’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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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 10 1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