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2

제목백발의 연인 #7522022-07-23 21:10

백발의 연인

 

할아버지는 못 말리는 장난꾸러기입니다. 할머니의 백발을 곱게 빗겨주다가 갑자기 툭! 하고 할머니의 뒷머리를 빗으로 칩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그 같은 장난에 샐쭉한 표정이 됩니다.

 

마당의 낙엽을 쓸어모으던 할아버지가 두 손 가득 낙엽을 집어 들어 할머니에게 휙! 뿌립니다. 급기야 할머니는 울음을 터뜨리고 당황한 할아버지는 얼른 달려가 할머니를 토닥거리며 달랩니다.

 

하지만 이번만은 할머니의 화가 쉽게 풀리지 않습니다. 한참을 전전긍긍하던 할아버지가 앞마당 한 켠에 피어있는 맨드라미 꽃 몇 송이를 꺾어다가 할머니에게 바치자 얼어붙었던 여심은 그제서야 사르르 녹아 내립니다.

 

2011 11 14일부터 18일까지 방송된 KBS 1TV 인간극장 백발의 연인은 당시 아흔 네 살의 조병만 할아버지와 여든 일곱 살의 강계열 할머니가 잉꼬부부로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휴먼다큐입니다.

 

6남매를 모두 결혼시키고 강원도 횡성 산골마을에서 73년째 신혼생활을 즐기고 있는 노부부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나도 나중에 저렇게 나이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어줍니다.

 

장난기 가득한 초등학생의 모습을 지닌 할아버지는 항상 싱글벙글, 끊임없이 할머니에게 장난을 칩니다. 감수성 풍부한 소녀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할머니는 늘 당하기만 하다가 시커먼 군밤 검댕을 할아버지 얼굴에 묻히는 복수를(?) 감행하고 나서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짓습니다.

 

한밤중에 화장실에 가야 했던 할머니는 집밖에 있는 화장실이 무서우니 플래시를 들고 화장실 문 앞에서 노래를 부르며 서있으라고 할아버지에게 주문합니다. 할머니가 볼일을 다보고 나올 때까지 할아버지의 노래는 그렇게 계속됩니다.

 

어디를 가든 커플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두 손을 꼭 잡고 다니는 노부부가 텃밭에서 키운 무를 좋은 건 자식들한테 주기 위해 남겨놓고 당신들은 덜 좋은 걸 골라 먹는 모습에서는 우리네 부모의 사랑을 읽을 수 있습니다.

 

노인대학에서 충주호 나들이를 다녀온 날 저녁, 할아버지가 감기몸살로 고열과 기침에 시달리자 할머니는 할아버지 곁을 한시도 떠나지 못하고 눈물로 밤을 지샙니다. ‘할아버지가 편찮으시다는 소식에 외지에 나가 살고 있는 아들, , 며느리, 사위, 손주들이 한걸음에 할아버지 댁으로 몰려오는 모습에서는 뜨거운 가족사랑이 느껴집니다.

 

백발의 연인은 총 5부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미 보신 분들도 있겠지만 아직 못 보신 분들은 꼭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부부끼리, 자녀와 함께 보시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입니다.

 

유튜브 창에 백발의 연인을 치시면 동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한 편이 33분 정도여서 다섯 편을 다 보시려면 1 65분 정도가 소요됩니다. 하지만 두 분의 귀여운 사랑이야기 속에 빠져있다 보면 시간이 금세 지납니다.

 

할아버지는 안타깝게도 작년에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껌딱지 할아버지를 먼저 떠나 보낸 할머니는 어떻게 지내시는지 걱정도 되고 궁금도 합니다.

 

아내와 저도 껌딱지부부라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어찌 보면 조병만 할아버지, 강계열 할머니와 우리 부부는 조금 닮아있는 듯도 싶습니다. 하지만 백발의 연인을 보고 나서는 좀더 착 달라붙는껌딱지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이 바보야, 그게 말이 되니? 자기랑 내가 나이 차가 있는데 그렇게 되면 자기가 손해지.” 아내와 저 사이에서 가끔 오가는 대화내용입니다. “난 나중에 자기랑 같은 날 죽을 거야라는 아내의 이야기에 대한 저의 핀잔 아닌 핀잔입니다. 이어지는 아내의 대답입니다. “나 혼자 몇 년 더 사는 것보단 그게 더 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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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 10 1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