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양아치니? 참 희한한 녀석들이었습니다. 한 무리의 새들이 자동차가 쌩쌩 지나다니는 차도에서 놀다가 자동차가
가까이, 그것도 아주 가까이 다가와서야 인도 쪽으로 종종걸음을 치곤 했습니다. 겁이 나서라도 후다닥 날아갈 텐데 이놈들은 절대 그게 아니었습니다. 호주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아내와 저는 이 녀석들을 보고 참 많이 어이없어 하면서
‘멍텅구리’라는 이름을 지어줬습니다. 한국에서의 참새보다는 덩치가 훨씬 큰 이 녀석들은 노란 부리와 더불어 눈 주위에도 노란색 피부를 가지고 있는
‘Noisy Miner’라는 새였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들이 알고 보니 멍텅구리가 아니고 ‘양아치’였습니다. 여러 마리가 떼로 몰려 다니며 다른 새들을 괴롭히는 건 물론이고 때로는 고양이나 개한테까지도 겁 없이 덤벼들곤
했습니다. 우리 집에 놀러 오는 하얀 앵무새 (Cockatoo)들 중 나이가 들어서인지 병이 들어서인지
털도 많이 빠지고 노란 볏도 안 보이는 녀석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Noisy Miner 대여섯 마리가 줄기차게 그 녀석을 따라 다니며 집중적으로 괴롭혔습니다. Noisy Miner들은 그렇게 약해 보이는 녀석들은 물론, 가끔은 혼자 있는 Cockatoo나 Kookaburra까지도 서슴없이 공격해대곤 했습니다. 한 녀석을 집단으로 괴롭히는 이놈들은 그야말로 ‘왕따’를 일삼는 양아치들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이놈들이 때로는 지나치게 기고만장, 화를 자초하기도 합니다. 한 번은 우리 집에 있는 고양이 (딸아이가 아메리칸 숏헤어 종인
고양이의 털이 해삼을 닮았다고 해서 ‘해삼’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가 뒷마당에 나갔는데 Noisy Miner 한
마리가 달려들며 요란하게 짹짹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이내 Noisy Miner 대여섯 마리가 한꺼번에 몰려들어 해삼이 근처를 맴돌았습니다. 그런데… 평소에 순하기만 하던 해삼이가 가만히 앉아 녀석들을 노려보는가
싶더니 일순간에 녀석들 중 한 마리를 낚아채 버렸습니다. 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이었고 동료 중 한
마리가 해삼이에게 잡히자 녀석들은 아주 난리가 났습니다. 제가 얼른 해삼이에게 달려가 입에 물려 있는 Noisy Miner를 빼내줬습니다. 다행이 살짝 물고 있어 죽거나 다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해삼이를 향한 녀석들의 무모한 도전은 그치지를 않고 있습니다. 해삼이는 사람과 함께 지내다 보니 고양이 특유의 야성이(?) 사라져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도
그저 순하기만 합니다. 함께 사는 개 (골든 리트리버)와도 친구처럼 지냅니다. 과자를 먹기 위해 날아드는 Cockatoo들도 전혀 건드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순해 터진 해삼이도 얌전히 있는 자신을 귀찮게 하는 Noisy Miner들에
대해서는 꾸준한 인내를 보이다가 결국 응징을 하고 맙니다. 저렇게 무모하게 덤벼들다가는 언젠가는 목숨을
잃는 놈들도 나올 법합니다. 호주에는 또 한 가지 이해가 안 되는, 정말 짜증나는 양아치들이 있습니다. 바로 ‘파리’입니다. 지난 주말, 앞마당과 뒷마당 잔디도 깎고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느라
온 가족이 분주했는데 줄기차게 사람들을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파리는 정말 Noisy Miner 못지 않은
양아치들이었습니다. 그래도 Noisy Miner들은 사람한테는 해코지를 안 하는데 파리들은 끈덕지게, 지겹도록 사람을 쫓아 다닙니다. 주로 얼굴 근처를 맴돌며 아무리
쫓아내도 집요하게 달라 붙어 입이며 귀며 눈이며 얼굴 곳곳을 공격합니다. 도대체 뭘 얻을 게 있다고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인간 세계는 물론, 동물의 세계에서도 Noisy Miner나 파리 같은 양아치들은 존재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김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