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2

제목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5892022-07-23 17:45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 예상과는 달리(?) 너무너무 잘 먹었습니다. 왼쪽 어깨에는 작은 가방을 메고 가슴에는 늘 한 두 권씩의 책을 안고 다니는 단정한 모습은 얼핏 보기에는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만 찾아 다닐 법한 그런 이미지였습니다.

 

그랬던 그녀가 사람 북적거리는 재래시장에서 순대국밥을 맛 있게 먹는 모습은 뜻밖이었습니다. “오빠, 이 집 순대국밥 정말 맛 있다. 우리 여기 자주 오자!” 하는 그녀를 순대국밥 집 할머니도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봤습니다.

 

아내와의 데이트 초기 시절 이 친구와 본격적으로 사귀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저는 아내를 서울 홍은동 시장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는 묻지도 않고 순대국밥 두 그릇을 시켰습니다. “내숭 떨지 않고 순대국밥 같은 걸 잘 먹는 여자라면 진짜 괜찮은 여자다!”라는 친구들의 강력한 부추김도 한 몫 했습니다.

 

그 후로 우리는 데이트를 할 때면 순대국밥이나 명동 리어카에서 파는 오뎅, 떡볶이, 홍합 그리고 분식집을 찾아 라면을 즐겨 먹었습니다. 가끔씩은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50원 더 주고 떡라면 먹을까?” 하며 즐거워하던 우리였습니다.

 

그렇게 데이트 시절부터 숨김 없이 서로의 모든 걸 보여줬던 게 비교적 무난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됐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내와 저는 예나 지금이나 명분을 따지기보다는 실리를 중요시 하는 점에서는 서로를 참 많이 닮아 있습니다.

 

지난 주 금요일, 결혼기념일에도 우리는 무덤덤하게 집안정리를 하다가 낚시터에 가 있는 지인들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저녁 무렵 비치에서 지인들이 떠준 연어회가 세상 어느 요리보다도 맛 있었고 밤늦은 시간 동네에서 김치전을 놓고 막걸리 잔을 부딪친 시간이 더 없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딸아이의 결혼식이 이제 2주 앞으로 다가 왔습니다. 결혼식은 아주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만 초대해서 조촐하게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신랑 신부 예물은 요란함(?) 대신 사랑이 담긴 반지로 대신하고 양가의 혼수도 과감히 생략하기로 했습니다. 결혼식 당일 하객들을 위한 식사도 맛 있고 깔끔한 한식메뉴로 결정했습니다.

 

대신 이리저리 들어가는 돈들을 아껴서 양쪽 집에서 두 아이가 내 집을 갖고 출발할 수 있도록 deposit을 마련 해줬습니다. 1인당 몇 백 불짜리 음식에 수백 명의 하객들로 북적대는 명분보다는 실리를 택한 겁니다.

 

비용 절감을 위해 비디오 촬영을 안 하겠다는 딸아이의 생각에 대해 그건 엄마 아빠도 겪었지만 두고 두고 아쉬움으로 남기 때문에 꼭 해야 된다고 챙겨줬고 내친 김에 11인승 리무진도 얹어줬습니다. 일생에 한 번뿐인 결혼식에 그 정도 사치는 필요할 것 같다는 판단에서였습니다.

 

결혼하는 딸을 향한 엄마의 마음은 아빠보다는 훨씬 애틋한 모양입니다. 아내의 뜻에 따라 지난 주에는 딸아이의 신혼 집에 황토침대, 화장대, 소파, 식탁 등을 비롯한 여러 가지 가구들을 채워 넣어줬습니다.

 

하나만 더, 하나만 더하는 아내의 이야기에 왠지 사기를 당하는 듯한 기분도 들었지만 기분 좋은 사기일 것 같아 마음은 편합니다.

 

결혼식 당일, 양가 부모에게 인사하는 순서에서 신랑이 바닥에 넙죽 엎드려 큰절을 하는 모습 대신 우리는 신랑 신부 둘이 나란히 서서 마음을 담은 인사를 하도록 당부했습니다.

 

신랑 신부 동시입장도 우리의 결정입니다. 처음부터 둘이서 나란히 모든 걸 시작하고 함께 헤쳐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역시 명분보다는 실리를 중요시 하는 의미에서의 결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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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