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2

제목“나도 아빠 많이 보고 싶었다!” #5252022-07-23 17:11

나도 아빠 많이 보고 싶었다!”

 

누나가 뭔데 날 때려? 정말 웃기지도 않아!”

이 자식아, 니가 똑바로 하면 나도 암말도 안 해. 쪼끄만 게 사사건건 누나한테 대들고 있어…”

내가 뭘 대들었다 그래? 누나가, 아니 니가 처음부터 재수 없게 굴었잖아!”

아유! 희진아, 희철아. 이제 둘 다 그만 좀 해. 너희 둘 다 똑 같아!”

 

아파트 현관문밖으로 고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가 싸우는 소리, 그리고 아이들 엄마 목소리까지가 요란스럽게 섞여 나옵니다. 벨을 누를까 하다가 그냥 비밀번호를 누르고 안으로 들어섭니다.

 

분을 못 참아 씩씩대던 아들은 아빠를 보더니 눈물을 훔치며 자기 방으로 획 들어가버립니다. 딸도 멋쩍은 표정으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고, 아내만 거실 한 쪽에 멀뚱히 서 있습니다.

 

소파에 털썩 주저 앉은 박운호 부장은 집 안이었음에도 담배 한 개피를 꺼내 물고 불을 당깁니다. 그리고 길게 한숨을 내쉽니다.

 

하루 종일 회사 일에 시달린 데다가 그날 따라 나이 어린 이사한테 심하게 깨지기까지 했던 정말 피곤한 하루였는데포장마차에 가서 술이라도 한 잔 할까 했지만 그마저도 힘들어 퇴근 후 곧 바로 집에 들어왔던 차에 그런 꼴을 당했던 겁니다.

 

, 아빠다! 엄마, 아빠 왔어!” 벨을 누르자 안에서 아이들의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아빠! 나 많이 보고 싶었지? 나도 아빠 많이 보고 싶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은 아빠 목을 감싸며 한껏 애교를 부립니다.

 

아빠, 여기 물…” 무뚝뚝한 중학생 아들은 어느새 시원한 물 한 컵을 들고 아빠 옆에 서 있습니다. 곁에 있던 아내는 최현철 과장의 옷과 가방을 받아 들고 편안한 미소를 짓습니다.

 

우리 승기가 이번 중간고사에서 전교 9등을 했대요. 다음에는 꼭 5등 안에 들겠다 네요. 그리고 승혜는 오늘 학교에서 갑자기 쓰러진 친구를 양호실까지 데려다 줬대요…” 거실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최 과장은 하루의 피로가 모두 풀리며 마음까지 편안해지는 걸 느낍니다.

 

별 것 아닐 수도 있지만 위의 박운호 부장과 최현철 과장이 받게 되는 심리상태는 하늘과 땅의 차이일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가장들은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다가 집에 들어가면 파김치가 되게 마련입니다. 가족들이 어떤 모습으로 대해주는가에 따라 가장의 피로는 두 배가 될 수도 절반으로 줄어들 수도 있습니다.

 

막 집안에 들어서는데 싸우는 소리가 난다든지, 소파에 막 앉는 남편을 향해 이번 달 신용카드 대금이 얼마가 나왔다는 둥 생활비가 적자라는 둥의 이야기를 하는 건 결코 현명치 않습니다.

 

무더운 날씨에 먼저 건네주는 시원한 물 한 컵, 반갑고 편안한 얼굴로 맞아주는 가족들의 모습이 가장에게는 다름 아닌 피로회복제이고 에너지 드링크일 겁니다.

 

부장님, 오늘 신기환 대리가 몸이 좀 안 좋아서 오후에 출근할 것 같답니다.” 월요일 아침, 막 사무실에 들어서는 강지훈 부장에게 여직원이 던진 첫 마디입니다.

 

그리 급하지도 않고 반갑지도 않은 이야기를 채 자리에도 앉지 않은 상사에게 던지는 것, 역시 현명한 처사는 아닙니다. 차라리 부장님, 그 동안 속 썩여오던 IBM과의 계약 건이 드디어 성사됐답니다라는 이야기라면 막 출근하는 상사를 붙들어도 한 없이 기분 좋은 일일 겁니다.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시작과 끝은 언제나 기분 좋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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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 10 1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