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구! 아직 색시네!!” 깜짝 놀랐습니다. ‘아직 색시’ 라는 말이 그토록
놀랍게 다가온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 올해 몇이우?” “칠십 둘이에요.” “아이구! 아직 색시네. 젊을 때 부지런히 놀러 다녀요. 나중엔 다리에 힘이 없어 잘 돌아다니지도
못해요.” ‘여든 두 살’ 되신 할머니가
당신보다 열 살 아래인 ‘일흔 두 살’의 할머니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지난 주 금요일 아침, 1년에
한 번씩 갖는 정기건강검진을 위해 아내와 함께 병원을 찾았습니다. 접수를 해놓고 순서를 기다리는데 우리
바로 앞 자리에서 할머니 두 분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계셨습니다. 물론, 두 분도 그곳에서 처음
만나는 사이였습니다. 여든 두 살 되신 할머니는 호주에 오신지 몇 년 안 되는 분이신데, 고혈압에 당뇨가 있는 데다가 관절도 안 좋고 귀가 잘 안 들려 보청기를 끼고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할머니로부터 ‘아직 색시’라는 과찬을(?) 들으신 일흔 두 살의 할머니는 호주에 오신 지 꽤
오래 된 분이셨습니다. “우리 손자가 ‘뉴사우스’ 무슨 대학인가 하는 델 다니는데 굉장히 좋은 학교랍디다. 손녀는
이번에 ‘셀락’ 뭐라든가 하는 학교에 들어 갔어요…” 여든 두 살 되신 할머니는 UNSW에 다니는 손자와 셀렉티브스쿨에
들어간 손녀가 많이 자랑스러웠던지 손주들 자랑을 그치지 않으셨습니다. 그 할머니가 진료차례가 돼서 안으로 들어가시자 일흔 두 살 되신 할머니가
우리를 돌아보며 말씀하셨습니다. “근데, 색시는 애기 가져서
병원에 왔수?” 우리는 ‘다시 한 번’ 깜짝 놀랐습니다. 펑퍼짐하고(?)
커다란 티셔츠를 헐렁하게 입은 아내를 임산부라 봐주신 겁니다. 그 할머니도 우리에게 이런 저런 얘기들을 해주셨습니다. 당신은 청소를 오랫동안 하셨고 나이가 들면서 얼마 전 당뇨가 생겼고 기운도 많이 떨어졌다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아직 여기저기 많이 다니며 봉사활동을 하신다는 그 할머니는 병원
안에 있는 행운목 하나가 시들시들한 걸 보시고는 가위를 찾아 직접 잎사귀를 깨끗하게 정리하셨습니다. “내 차례 오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하노? 한
시간 정도면 되나? 내 여기저기 좀 댕겨 올끼고마. 참, 색시! 진짜 어려 보인다. 검진
잘 하고 가소!” 하며 할머니는 씩씩한 걸음으로 나가셨습니다. 아내와 저는 마주 보며 소리 없이 웃었습니다. 82세 할머니가 72세 할머니에게 ‘아직 색시’라고 하신 말씀이나 72세
할머니가 우리를 ‘애기(?)’ 대하듯 봐주시는 걸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실제로 저도 후배들이나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이야기들을 종종 하곤 합니다. 물론 제 후배나 우리 아이들도 자신보다 어린 사람들에게 비슷한 얘기를 하고 있을 겁니다. 지극히 당연하고 새삼스런 이야기이지만 사람은 항상 ‘그 순간’에 충실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날 두 할머니와의 짧은 만남은 “현재의
위치에서 정말 열심히 일하고 즐기며, 의미 있고 재미 있는 일들도 많이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갖게 했습니다. ********************************************************************** 김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