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지게 나이 들기

주문한 음식들이 모두 나왔습니다. 본격적인 식사에 앞서 ‘한 말씀 하시라’는 부추김에 그분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뭐, 내가 특별히 할 얘기가 있나요? 그냥 고마운 거지요. 같이 놀아줘서 고맙고 늘 빼놓지 않고 챙겨줘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이 자리에 함께 해주고 예쁜 선물도 주고… 이렇게 같이 놀아주는 여러분한테 늘 고마운 마음입니다.”

지난주 토요일, 산행을 마친 우리 시드니산사랑 활동멤버 열네 명 전원이 이스트우드의 한 식당에 모였습니다. 다음 달 팔순을 앞두고 있는 최고참 멤버 부부가 한턱 크게 쏘기로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배가 터지게 음식을 먹고 나니 이번에는 카페로 자리를 옮겨서 생일케익이며 커피까지… 그 부부는 그날 그야말로 풀 코스로 우리를 이끌었습니다. 시간가는 줄 모르는 정겨운 담소는 유쾌한 덤이었습니다.

그날의 화두는 건강과 고마움이었습니다. 올해로 여든 살이 된 그분은 젊은 시절 마라톤을 비롯, 여러 가지 운동을 계속한 덕에 지금도 탄탄한 체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6년 전 시드니산사랑 울룰루 여행 때는 그 부부가 가장 먼저 울룰루 정상에 뛰어올라가 인증샷을 찍었고, 지금도 토요 산행 때마다 늘 선두그룹을 이끌며 씩씩하게 걷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니에요. 이젠 조금 많이 걷는다 싶으면 다리에 무리가 오는 걸 느끼곤 하는 걸요. 정말이지 나이는 못 속이는 것 같아요”라며 겸손해 합니다.

그 부부는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많이 걷고 여기저기 여행도 부지런히 다녀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분들은 내년 2월, 다른 부부 두 팀과 함께 타스마니아 한달 캠핑 계획을 확정해놓고 있습니다. 시드니에서부터 직접 차를 몰고 타스마니아까지 가서 한달 동안 전 지역을 누비며 캠핑을 한다는 건… 젊은 사람들도 쉽게 덤벼들 수 없는 멋진 도전입니다.

“토니씨, 테레사씨, 어디 놀러 갈 때 우리도 좀 끼워줘요. 절대로 걸리적거리거나 불편하게 안 할 테니까…” 웃음 섞인 그분들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진심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얼마 전에도 그분들을 ‘끼워서’ 서섹스 인렛 3박 4일 여행을 다녀왔고 앞으로도 여행 기회가 닿는 대로 그분들과 ‘함께 놀’ 생각입니다.

골프야 원래부터 치던 거고 그분들은 최근 얼마 전부터는 낚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해 열심히 도전하며 즐기고 있습니다. 지난번 서섹스 인렛 여행에서는 처음으로 연어를 네 마리나 낚아 올리며 짜릿한 손맛을 만끽했습니다. 그에 탄력을 받아서인지 며칠 후에는 친구들과 송어 낚시와 대구 낚시를 간다고 어린아이(?)처럼 들떠 있습니다. 낚시 멘토(?) 격인 아내한테서 이런저런 것들을 열심히 배우는(?) 모습 또한 멋져 보였습니다.

그분들이 멋진 이유는 ‘돈 쓸 줄을 안다’는 부분에도 있습니다. 재벌 혹은 부자 소리를 들을 만큼 돈이 많지는 않은 분들이지만 ‘써야 할 곳에는 쓴다’는 건 우리와 생각이 일치합니다. “돈도 많은 사람이 왜 저렇게 쪼잔하대? 죽을 때 싸 갖고 갈 것도 아니면서…” 하는 소리를 듣는, 돈 많은 사람들의 행보와는 크게 비교되는 대목입니다.

누군들 내 돈 아까운 줄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정말 심하다 싶을 정도로 돈 때문에 발발 떠는 사람들을 보면 안쓰럽기까지 한데 이분들은 그 부분에서는 가히 화통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몸소 실천하는 분들인 겁니다. 얼마 전에는 세 살 아래인 아내가 최신형 보라색 접는 스마트폰을 갖고 싶어하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폰을 사서 안겨주는 멋짐도 보여줬습니다.

단체생활에서 나이가 들었다고 대접 받기를 원하지도 않고 돈을 쓰는데 있어서도 안 내거나 덜 내려는 생각보다는 ‘내가 조금 더 쓰지’ 하는 생각을 갖고 있으면 서로가 편안해집니다. “계속 건강하셔서 10년 후에 또 이런 자리 마련해주세요!”라는 덕담을 했지만 그분들의 건강함과 건전한 사고방식은 뒤따라가고 있는 우리로서는 꼭 닮고 싶어지는 대목입니다. 그분들에게서 쪼잔하지 않게, 건강하고 멋지게 나이 들어가는 방법을 읽고 있어 우리의 마음도 덩달아 흐뭇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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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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