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돈? 눈먼 돈?

정말이지 멋모르고 얼떨결에 산 차였습니다. 호주에 온지 일주일 남짓 만에 사주 (社主)의 닦달에 등 떠밀려(?) 산 저의 첫차는 포드 팔콘 (Falcon)이었습니다. 넘겨받고 보니 주행거리가 34만km가 넘은 똥차?! 배기량이 4000cc라서 기름 먹는 하마(?)임은 물론, 멀쩡히 길을 가다가도 꺽꺽 소리를 내며 멈춰서기가 다반사였습니다.

3000불만 더 있었어도 7000불짜리 10년쯤 된 중고 도요타 캠리 (Camry)를 살 수 있었을 텐데 그때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결국 두 달 만에 새로운 차를 찾기로 하고 아내와 둘이서 파라마타 로드 중고차 시장을 이 잡듯 샅샅이 뒤졌습니다. 하지만 중고차 가격도 새 차 못지 않은 호주에서 가진 건 쥐뿔도 없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없었습니다.

낙심을 하고 있던 어느 날… 문득 한국 신한은행 계좌를 열어봤는데 눈먼(?) 돈 300여만원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기자고 뭐고 필요 없고 돈이나 벌자’라는 마음에 1년 남짓 근무했던 홍보대행사 링크인터내셔날에서 뒤늦은 연말정산을 포함한 이런저런 수당을 챙겨준 것이었습니다. 꿈에서도 생각지 못했던 그 돈은 우리에게는 그야말로 가뭄에 단비였습니다.

그걸 종잣돈으로 우리는 과감하게 현대 엘란트라 (한국의 아반떼 XD) 새 차를 샀습니다. 그때는 457브리징비자 상태였으므로 엄청나게 높은 이자율이 적용된 60개월 할부였지만, 한국에서 타던 소나타 III에 비하면 훨씬 작은 차였지만, 어머니까지 다섯 식구가 꽉 끼어 타면서도 행복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벌서 20년 전의 일입니다.

복권… 많은 사람들이 일확천금을 꿈꾸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저는 애초부터 그런 쪽에는 눈도 돌리지 않았지만 아내와 딸아이는 아주 아주 드물게 복권을 사곤 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늘 몇 십 불을 들여 몇 불 정도의 당첨금에 만족해야 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아무리 재미로 (아주 작은, 은근한 기대를 포함하긴 하지만) 사는 거라지만 ‘차라리 그 돈으로 삼겹살을 사먹는 게 훨씬 낫겠다’라는 게 저의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66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당첨’이라는 것과는 단 한번의 인연도 가져보지 못했습니다. 학창시절 ‘0시의 다이얼’ 혹은 ‘밤을 잊은 그대에게’ 또는 ‘별이 빛나는 밤에’ 같은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도 추첨을 통해 뭔가를 받은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반면, 수필 같은 걸 보내 우수작으로 뽑혀서 상품을 받은 건 꽤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때부터도 저는 ‘뭔가 요행을 바라기보다는 내 노력과 실력에 의해 먹고 살아야 할 팔자’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실제로 저는 한국에서나 호주에서나 저의 노력이 아닌 뜻밖의 운으로 뭔가를 얻은 적은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저는 남의 돈을 떼먹은 건 단돈 10원, 단돈 10센트도 없었고 오히려 이래저래 못 받고 뜯긴 돈들이 만만치 않습니다. 정말이지 돈이 없어서, 상황이 안 돼서 못 주는 경우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아예 떼먹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적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고 얄밉기도 하고 속이 상하기도 합니다.

어처구니 없이 침몰하는 회사를 살려보겠다고 몇몇 전우(?)들과 함께 1년반 동안 월급도 안 받고 30대 젊음을 바쳤던 저의 최애 (最愛) 회사…. 1996년 초, 사장부인 겸 이사가 저에게 했던 말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김 부장, 고생시켜 미안해요. 사장님과 나도 이런저런 걸 다 잃었지만 전농동 집은 용케 건졌어요. 거기에 연립주택을 지으면 열 채쯤 나올 건데 한 채에 1억 정도는 될 거예요. 내가 김 부장 몫으로 한 채는 꼭 빼놓을 게요.”

2001년 9월, 호주로 ‘맨땅에 헤딩하기’식 이민을 결정하고 비자신청을 위한 회사 재직증명서를 받으며 마지막 만남을 가졌을 때 사장이 저에게 했던 말도 뚜렷이 기억됩니다. “김 부장, 내가 살아 있는 한 자네 돈은 꼭 갚겠네.” 20년이 훨씬 넘어버린 두 개의 약속… 당시 액면가 4500만원 정도였으니 꽤 큰돈입니다. 이 두 개의 약속 중 한 가지라도 실현된다면 부인할 수 없는 큰 힘이 될 수 있을 텐데 아직 그 시기가 안된 모양입니다. 어느 쪽이든 저에게는 분명 공돈이나 눈먼 돈은 아닐 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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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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